보좌시절 밤 늦게 전화가 걸려왔다. 부부싸움을 하는데 신부님이 증인을 서주어야겠다는 것이다. 미신자인 남편의 호통을 옆에서 말리는 자매님의 음성이 들리지만 도대체 내가 왜 필요한지도 모르면서 나섰다. 집에 들어서니 살벌하다. 본당에서 활동하시는 얌전한 자매님과 성당에 나가는 것에 반대는 않지만 시간을 너무 빼앗겨 살림에 지장이 있다는 형제님과의 부부싸움으로 기억된다. 한쪽에 앉아 부부가 다투는 얘기를 들었다. 간간히 남편의 물음에 간단히 대답하고 몇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르며 통금해제의 싸이렌 소리가 나서야 돌아왔다.
지금 기억을 더듬어 봐도 무슨 내용으로 싸운건지, 어떻게 싸운건지 도대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성당에 왜 그리 자주 나가느냐? 성당에 도대체 누가 있어 그러느냐?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남편의 물음이 계속되었던 것 같다. 참으로 지루하고 듣기에도 거북스러운 시간이었고 동문서답의 대화가 오고간 것 같다. 공포의 터널을 빠져나온 듯한 해방감으로 돌아와 혼자서 아픈 상처를 달랬다.
그런 기억이 뇌리에서 사라진지 오랜 세월이 흘렀던 어느 날, MㆍE 주말을 마치고 나오는데 바로 그 부부가 나란히 꽃다발을 들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나를 보았는지 알 수 없으나 그 부부가 이런 자리에 함께 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서로 얼굴이 마주쳐 목례를 했으나 어색한 만남이었다. 그러나 나로서는 참으로 반가운 만남이었고 둘이서 다정히 서있는 모습이 퍽이나 아름다웠다. 사람이 저렇게도 변하나 보다. 본당의 신자에게 그 부부에 대해 넌지시 물었다. MㆍE 부부로 다정다감하고 남편이 MㆍE활동에 열심히 동참하고 있단다. 나 혼자만의 음울한 추억을 안고 그 부부의 어제와 오늘의 모습을 비교해 본다. MㆍE 교육만이 이런 변화가 가능하리라.
MㆍE주말봉사를 하며 이런 확신을 더욱 굳혔다. 대화시간에 부부가 큰 소리로 싸우다가 남편이 더 이상 교육을 받지 못하겠다고 보따리를 싸들고 현관으로 나온다. 달래고 달래서 돌려보내면 다음날 아침엔 부부가 손을 붙잡고 정답게 내려온다. 소감을 물으면 이런 분들이 맨 먼저 주말의 감회를 발표한다. 이런 변화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하느님의 은총은 투박하게 사랑하는 이들에게 더욱 풍성히 내리는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 수고해주신 대구대교구 이용호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호부터는 전주교구 신태인본당 주임이신 나궁렬 신부님께서 맡아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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