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었건만 여전히 가슴은 답답하고 마음이 무겁다. 태풍이 휘몰아친 날들처럼 그 어려운 87년을 살고 난 지난해였건만, 세모(歲暮)가 되어도, 서울의 어느거리, 지방 어느 고을에선 최루탄이 터지고 화염병과 돌덩이가 날으며 젊은이들은 마치 원수진 것처럼 패를 갈라 맞싸우고 있었다. 기쁜 성탄 전날 밤,명동거리에선 일부고 교생까지 시위를 벌였다는 안타까운 뉴스, 어찌해야 할까.
모두가 원하던 민주화 물결속에서 16년만에 치른 선거탓인지 우리나라 역사속에서 일찌기 없었던 격렬한 선거전이 용광로속의 불덩어리처럼 끓어넘쳤다.
그간의 일들이야 보거나 듣고 싶지않던 갖다지 곱지않은 슬픈 양상을 새삼 말해 무엇하랴.
야당에서 제기한 부정선거시비가 아직 가려지지 않은 시점이지만, 어떻든 선거는 끝났고 새대통령 당선자를 축하하는 지지자들의 환영모임도 지난해 일이다.
하긴 나는 야당 한쪽 후보의 민주화 투쟁경력과 함께, 그 후보에게 진 정치적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하여 기꺼이 한표를 던진 사람이긴하다. 그러나 야당 후보자들은 구태의연한 정치의 신속에서 지리멸렬, 초반부터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나만이 대통령감이다』라는 환상으로 핵분열을 하더니, 지역감정까지 겹쳐 피투성이 못습을 연출하며 패배하였다. 이제는 60%이상의 반대자가 있었다한들, 소걸음일지라도, 안타까운데로 새 민주화의 길을 가도록 지켜보고 기다려볼 수밖에 없는것이다.
막스 베버는 정치가의 윤리(倫理)란 「결과(結果)윤리」라고 했다.『끝이 좋으면 모든것이 좋다』는 것이다. 정치가가 뛰어난가 아닌가는 결과로 결정된다는 것.
결과가 나오기 전에 부도덕하다든가 어떻다든가는 관계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널핏 생각에 정치가에게 너무 안이하고 달콤한 생각을 한다고 비판받을 일 같지만, 이처럼 엄격한 평가도 없다고 했다.『최선을 다 했으나 안됐다』는 변명은 통용되지않는 것이 정치인가보다. 정치가란 우선 국사(國事)를 첫째로 하고, 국민의 장래를 생각해서 어느만큼 일을 했는가의 한가지로 책임을 물을 수 있다니까-.
야당의 패인(敗因)이 단일화 실패였음을 알면서도 그들은 한주일이 지나서야 겨우 지지자들 불만에 들리듯 미안함을 보였다. 따가운 국민 여론에 밀려서 냉정을 되찾은 탓인지 부정선거를 가려내는 일과 함께 전열을 가다듬어 국회의원 선거법개정과 선거전에 나설 채비를 갖출 움직임도 보였다.
하지만 그들에겐 재야세력과 함께(물론 여당도)우선 해야할 책임이 있다. 더 이상 젊은이들을 희생기키거나 멍들게 해서는 안되는 만큼, 불만으로 끓는 그들을 진정시키고 달래주는데 앞장서야 한다.
공자는 정치윤리에 대한 의무이행으로 『외무란 국민의 안전과 생활보장, 나라의 번영, 외적(外敵)으로부터 자국(自國)을 지키는 일』이라고 했다. 개인의 영달이나 권력을 잡거나 누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정치적 부작용으로 어느쪽 누구든 희생되거나 생업에 지장을 받아선 안된다. 더 이상 슬픈일이 번져가지 않도록 수습하는 일에 모두가「열」과「성」을 다해야한다. 40%의 지지도 못받은 여당이 선거에 이겼다고 승리감에 젖거나 우쭐댐이 있어서도 안되고, 선거에 진 야당은 자업자득인만큼 자성(自省)은 클망정 원망과 원통함의 책임을 서로에게 밀며 실랑이하고 있을때도 아니다.
오랫동안 사법권이 흔들리고 언론이 제 구실을 못해온 탓으로 국민들에게 불신을 받아오긴 했으나, 그래도 87년 6월 민주화 행진으로 빚어진 6·29선언후 모두가 반성하며 나아지는 기색이다. 하긴 사실보다나 비판기능이 또다시 미흡해지는 구석이 고개드는 상횡이 엿보이지만,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정치권의 의식수준보다 사뭇 높아진 현실에선 언론도정신을 새롭게 가져야 한다. 행정의 빗나간 일들이나 사회의 부조리를 마냥 바라보며 체념하고 있던 시절이나 국민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해부터는 젊은이들이 거리에서 또다시 데모로 세월을 보내며 최루타을 받아내고 화염병괴 투석이 날으는 일이 없도록 정치지도자들의 사심없는 나라 사랑과 젊은이들 사랑으로 진정되었으면 한다. 새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여당은 국민 화합 차원에서 시국 사범들에 대한 대대적인 사면을 생각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두고 볼 일이지만, 어떻든 이 기회에 야당도 이번 선거의 패배를 거울삼아 보다 큰 정치, 큰 마음들이 되는 차원 높은 야당인으로서 과감한 체질개선과 의식개혁으로 지지자들에게 부응해야 한다.
그리하여 눈앞에 닥친 국회의원 선거에서 보다 많은 의석수를 차지하여, 만의 하나, 소수의 지지율로 당선된 것을 잊은듯, 여당이 전철을 밟아 독주하거나 민주화에 역행하는 일이 없도록 견제하고 감시하고 이끌어나아갈 새로운 선진야당모습을 보여줘야한다.
왜냐하면 새대통령 당선자는 올림픽이 끝난 1년후엔 국민들에게 재신임을 묻겠다는 공약을 거듭하고 있다.비록 그것이 여당의「눈가리고 아웅」하는식의 빈말이라도 현실승복을 한바에야 새로운 민주화 시대가 열리도록 지켜보는 도량도 가져야할 것이 아닌지.
내가 다니는 본당 신부님은 신앙인의 마음자세를 쉽게 일러주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해준 적이있다.『개신교의 열의, 불교의 정성, 가톨릭의 진리(眞理)를 실천하는 마음을 가지고 행동하라』-이러한 마음자세야 어찌 신앙인들 뿐이야. 우리들 모두가 지키며 살아갈 자세일 것이다. 정의로움 속에서 정성과 열의로 사랑과 평화를 서로에게 나누어주며 실천하는 새해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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