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에 있어서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세 가지 큰 요소는 정치ㆍ경제ㆍ문화라고 생각한다. 넓은 뜻에서 종교는 문화에 속한다고 보아야 한다.
최근 교회와 정치에 관해서 여러 가지 의견들이 펼쳐져서 대체로 종교는 정치에 초연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집약되었다고 할 것이다.그 의견을 대표하고 아울러서 모든 신자를 포함한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권위 있는 견해는 바로 지난해 11월20일에 발표된 주교단의 담화문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대통령선거에 임박해서 평신도사도직협의회의 주교단 결의를 일탈한 호소문은 대부분의 신자들을 놀라게 하면서, 우리교회의 자랑인 순명의 풍토가 무너지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품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을 더욱 경악케 한 것은 선거를 이틀 앞둔 시점에서 발표된 이른바 2백2명 사제들의 특정후보 지지성명이었다.
물론 그 동조하신 사제들 가운데는 친면과계로 마음에는 없으면서 차마 물리치지 못한 이들이 상당수 있으리라 짐작되는 바이지만, 일단 그들의 의견은 의견으로 알 수밖에 없다고 본다.
필자개인의 입장으로는 또 한 번 그에 덧붙여 놀랄 수밖에 없었으니, 바로 본당주임ㆍ보좌신부님 두 분이 그 의견에 함께 하였다는 사실이었다.
사도직협의회나 일부사제단의 행동이 주교단의 결의를 무시한 일방적인 일인 것과 같이, 필자의 생각도 아주 일방적인 것이나 아닌지 반성해보는 바이나, 그렇다고 한다면 주교단의 결의나 의견도 일방적인 것이라 할 수밖에 없으므로 반성할일은 아니라고 하겠다. 그러나 직감적인 인상으로는 그런 사제들에게서 어떻게 성사를 받나 걱정될 정도였다.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정치라는 것은 사람이사는 세 가지 큰 요소 중의 하나라 할 것이므로 같은 세 가지 요소 중 문화에 속하는 조욕도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요소인 것이며 그렇게 볼 때 이 세 가지 요소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교우는 정치와 종교를 사람의 코와 입으로 비유하였지만, 정치나 종교가인간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며, 정치는 곧 인간이라고도 규정해야한다.
그러나 이 같은 견해는 넓은 의미에서 정치의 개념을 말하는 것으로서, 주교단이나 양식 있는 교회지도자 또는 그 체계에서 말하는 정치라는 뜻은 매우 속된 의미의 그것이라고 해야겠다. 즉 정당이나 정치단체가 하는 정치행위를 교회 이름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인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재론의 여지가 없다. 신자 개인적인 정치행동을 막자는 뜻은 추호도 없는 것이므로 그것조차 안 된다는 것처럼 해석하는 일은 그 자체가 속된 정치행동의 일단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이 같은 비경제적 쟁론이 계속 벌어질까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두 가지 면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교회단체의 이름으로 속된 정치행동 유형에 속할 일이 발생하는 것은 정치행동의 교회의 침입에서 비롯된다고 해야겠다.
어떤 정치집단이 스스로의 목적을 위해서 교회를 상대로 집요한 공작을 펴는데서 나오는 현상이라고 보아야 한다. 물론 그런 일은 촉매역할을 하는 교회 유력인사가 있음으로써 가능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쉽게 생각하면 촉매역할을 하는 교우들은 개인행동을 하면 되지 않겠는가 말할 수 있지만 상대방이 교회적 또는 교회 산하 단체적 호응을 원하는 것이므로 그것은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라고 해야겠다.
다음에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속된 정치행동에 관심이 있거나 그 행동에 가담하고 있는 교우들이 교회적 정치 행도을 추구하는 경향인데 그것은 교회라는 이름의 우산을 뒤집어씀으로써 공권력의 압력이나 그 힘을 저지할 수 있지 않나하는 극히 섬세한 의도에서 나온 용기가 결여된 태도에 기인한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부류에 속하는 교우들이 상하위에 막론하고 대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이것은 죄송한 말이지만 비굴스런 일이므로 저 안중근 토마스 의사처럼 강인한 의지를 가지고 가톨릭신자답게 혼자건 둘이건 셋이건 그 이상이건, 주교단 가르침에 따라 우리 신자들은 정치활동이 필요할 경우 교회외적 자격으로 충분히 활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그 신념여하에 따라 가톨릭신자다움으로 인정받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교회까지도 명예롭게 하여 복음전파에 큰 이바지를 한다고 확신한다.
이번 주교단 담화이후 권위 있는 가톨릭의 인식을 범사회적으로 심을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에 평신도협과 일부 사제단의 일은 우리의 순명의 명예를 깎아내린 지극히 유감스런 행동이었다.
주교단의 결의에 거역한다는 것은 최악의 항명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사례를 남긴다면 사제는 주교에 거역하고 평신도는 사제께 거역하는 일반적 사태가 닥쳐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평신도들이 그 같은 단체행동을 해도 만류해야할 평신도협과 사제들이 앞장서서 그 터부를 깼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교회답지 않은 투쟁 집단적 행동이라고 감히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힘에 의한 행동과 같다. 주교단을 힘으로 극복하겠다고 생각한다면, 이미 그것은 가톨릭교회의 일이 아니지 않는가 한다.
책임이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면 이제라도 그 일을 중화할 수 있는 묘책을 강구해주시기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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