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년 새해를 맞는 마음들은 참으로 다양한것 같다. 사람에 따라 계층에 따라 처한 형편에 따라 새해를 점치는 마음들은 천차만별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갈래 갈래로 나뉘어지는 내일에 대한 전망이지만 너나를 막론하고 분명하게 집약되는 것은 단한가지다. 정치발전, 민주화의 흐름은 결코 멈출수 없다는 것 바로 그것이다.
때로는 숨통이 막히고 때론 분통이 터지면서 우리가 걸어온 고난의 길뒷편에 서서 돌아다보는 어제는 분명 아픔과 환난의 연속이었다.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4ㆍ13호 헌조치, 사제들의 단식, 6월 민주항쟁, 629선언, 노사분규, 그리고 대통령선거돌풍…다시는 기억하고 싶지않지만 결코 잊을수 없고 잊어서도 안되는 지난 1년의 역사가 두 눈을 부릅뜨고 버티고 서 있음을 생각할 때 오늘의 결과가 미진하게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치를수 밖에 없었던 엄청난 희생의 댓가로 볼 때 더더욱 그렇게 느껴질수 밖에 없다.
「미진한 결과」에 대한 책임은 이미 공공연하게 언론매체를 통해 국민각자의 마음속에서, 소규모의 모임들을 통해 물을만큼 물은 것도 사실이다.
국민의 여망과 심중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한 책임에서부터 흘러간 유행가 가락같은 현실성을 상실한 선거전, 사람들의 심사를 있는대로 뒤틀어 놓고만 막판의 니전투구등등은 그 책임의 당사자들이 그동안 이룩해온 눈부신 공적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믿고 지지해온 수많은 사람들을 분노로 들끓게 하고있다.
그렇다고해서 무작정 분노와 비판속에만 머물러 있을 시간은 없다. 그 분노와 아쉬움을 딛고 다음의 단계로 넘어가야할 이유들이 바로우리 눈앞에 산적해있기 때문이다.
36%라는 지지율로 정상을 차지한 대권주자가 대표성의 문제를 망각하지 않도록, 다부진 마음과 열린눈이 지금 우리에겐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미진한 결과에 대한 아쉬움 속에서도 우리가 믿고자하는 희망은 이미 돌이킬수 없을만큼 멀리 달려온 민주화의 물결이다. 새 대통령 당선자가 정권을 확실하게 잡은후 강권(强權)정치로 복귀할 것이라는 우려의 소리는 그래서 설득력이 적은지도 모른다.
여러갈래로 갈라진 미래에의 전망 가운데서도 두드러진 진단은 당겨진 화살과도 같은 정치발전과 민주화가 진진(直進)할 수밖에 없으리라는것이다. 그것은 객관적인 조건이 허용치 않을 것이라는 명목 외에도 지난 1년간 표출된 열화같은 외침속에서 너무도 선명히 드러난 민주화의 물결은 그흐름을 되돌려 놓기엔 너무 멀리 흘러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측을 불허하는 상황전개, 빠르게 변화하는 정치의 흐름속에서 「이젠 교회차례」라는 얘기가 여기 저기에서 나오고있다. 한마디로 압축해 표현할수는 없지만 정치적 또는 사회적 혼돈과 변화의 물결에 부분적으로 호흡을 같이해온 입장에서 볼때 교회차례의 의미에 주목해볼 필요는 충분하다.
결코 지적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난 1년의 격변속에서 교회의 갈등이 표출된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정치 현실에의 적극적인 참여, 한계성을 분명히한 참여, 그리고 관망적 참여 등이 뒤엉키면서 떠오른 갈등이 그 첫번째 양상이다. 이른바 제도권 교회와 「현장교회」로 양분되는 교회의 이원화 현상은 참여문제를 놓고 겪은 갈등속에서 탄생된 하나의 소산물이라 할 수 있다.
바람직하지 않은 소산물이라는 염려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교회가 제도권 교회만으로 또 현장교회만으로 그모습이 고착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고있는것 같다.
크게는 현실참여 문제로 제기되는 교회자체의 갈등으로 보여지지만 보다 근원적인 요소는 교회 구성원간의 작은 대립에서 찾아볼수 있다. 최근들어 첨예화 현상을 보이고있는 교회 구성원간의 대립은 교회 최고 장상들과 평신도들의 관계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전국 평협의 기능과 활동 그 기능과 활동의 기초가 되는 회칙에서부터 비롯된 대립과 갈등의 모양들은 갈등의 밖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당황과 우려를 안겨주고있다.
당황과 우려속에서 간과할수 없는 것은 문제의 발단과 처리과정, 이에 대한 대처자세 모두가 「교회의 틀」을 벗어났다는데 대한 비판의 눈이다.
여기서 고백하지 않을수 없는것은 문제의 핵심을 명쾌히 설명하지 못하고 애매모호하게 얼버무리는 교회언론의 「비겁함」이다. 교회구성원간의 작은 대립의 정체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도 많겠지만 모르는 사람역시 많다는 사실을 전체로 할 때 이같은 애매모호한 얼버무림은 참다운 교회언론의 자세가 아님은 분명하다.
이미 이를 간파한 여러 독자들로부터 무수한 질타를 받으면서도 비겁함에서 한발짝도 전진할수 없는 상황,그것이 오늘 우리 교회언론의 실상이다.
「비판의 눈」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풍토속에서 이젠 교회차례라는 지적은 진정 실감이 난다. 네 주장과 내 주장이 맛부딪쳐 소리나는 사회 그속에서 비로소 발전이 야속되는 것이 사회생활의 규칙이란면 사회의 복음화가 지상최대의 과제인 교회의 역할은 분명 고려해볼 여지가 있다.
민주화를 위해 정신없이 달려온 달음박질을 잠시 멈추고 우리의 모습을 몰아볼 때는 바로 지금이 아닌가 싶다.
내 주장과 견해와 다르다면 독선을 버릴 때도 지금이다. 내 생각과 입장을 강요할 시기는 이미 지났다는 현실로 눈을 돌려야할 때도 바로 지금이다. 사랑이라는 토대 위에서 정의를 찾고 화해의 메신저가 되어야하는것도 지금이 시점이다.
교회를 보고 믿음을 생각치 못한다면, 교회를 보고 소망을 키우지 못한다면, 교회를 보고 사랑을 불러일으킬수 없다면 그것은 진정 함께 치유해야할 교회의 상처가 아닐수 없다.
사랑이 결여된 매는 문제아를 만든다는 평범한 진리를 생각하면서 교회구성원 어느 한사람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갈대밭에 외친 이솝우화의 이발사가 되지않는 무진년 새해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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