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읍단위 시골에 살고있는 교우 한 분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는 어떤 조합의 지난해 총회 후일담이었다. 시골조합이라서 그러지는 몰라도 총회를 불이면 성원이되지를 않아 몇번이고 유회를 거듭하기 때문에 총회때만 되면 골머리를 앓는다는 것이다. 지난해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한번의 유회를 맞고 난 다음 간부들이 일손을 놓고 아예 위임장을 받으러 호별방문을 하여 겨우 회의는 조합원의 과반수 참석으로 성립이 되었는데 그것도 위임한 조합원이 과반수를 넘었다는 것이다.
회의를 진행하면 으례 발언을 잘 안하기 때문에 임원선출 차례에 이르는데 별반 시간이 안걸렸으며 이날따라 순조로이 새로운 이사장 선출까지 모두 마쳤으나 문제는 여기서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사장으로 선출된 분이 자경이 없다고 하면서 취임을 사양했으므로 이를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상당히 걸린터라 다시 이사장 선출을 하려고 출석 조합원수를 헤아려보니 성원에 미달되었기 때문이다. 가는 사람 못가게 막고 간 사람 다시 불러 재적과반수를 채우고서 이사장을 새로 선출하고나니 회의 시작한지 5시간이 경과했으며 해는 서산에 거의 기울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로써 일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회의를 마치는데만 급급한 나머지 새로 뽑힌 이사장의 취임 의사를 확인하지 않았는데 아니나들까 이틀 후에 결국 그분마저도 취임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총회가 다시 소집될 때까지 조합은 마비상태에 놓였고 이 사태를 원만히 해결하는데는 두달이 걸렸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누구든지 실소를 금치 못할 것이다 도대체 그 조합의 규약이 그 조합원의 수준에 맞는것인지, 그 조합원들에게 회의 의식이 있는 것인지 실로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조합원 총회에서 직접 이사
장을 선출해야 한다는 규정은 참으로 민주적이다. 그러나 그 민주적인 규정이 제대로 빛을 보기 위해서는 총회를 총회이게 만드는 조합원들의 회의 진행 능력이 따라주어야 한다. 회의진행 능력이라 말했지만 거기
에는 참여의식이나 최선의 결론을 낳기 위한 의견 개진, 그리고 하자없이 결집된 총의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 등이 포함된다. 이사장으로는 선출된 이가 총의에 기꺼이 따르자면 공인의식이 없고서는 불가능 할것이다. 자기에게 돌아오는 이권이 없고 더군다나 위험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는 이사장 자리를 맡는데는 그만큼의 희생과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기때문이다.
「공인」이라 함은 사회나 국가를 위해 일하는 사람을 두고 말한다. 또 사회나 국가를 이루는 구성원으로서 개인을 가르킬 때 공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든 공인의식이 있을 때 공인이 된다.그 의식은 개인이 이욕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며 개인의 감정에도 좌우되지 않는 것이다. 자기를 죽이고 희생하는 이른바 減私奉公의 그런 의식인 것이다.
화제를 돌려서 지나간 대통령 선거를 놓고 이야기해 보자. 후보자들은 후보자들대로, 유권자들은 유권자들대로, 공직자는 공직자들대로, 매스컴은 매스컴대로 각기 공인의식에 투철했는지 어쨌는지를 자기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선거전에 돌입할 무렵 어떤 후보자가 『나만이 분명히 할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을때 나는 강한 거부감으로 한동안 멍해 있었다. 유세장에 잘 안나가는 쪽이어서 유세용 언어에 길들지 못한 탓이었을까? 그러나 놀라는 것은 다른 후보자들의 말에서도 예의 그 말을 간간이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후 이런 말을 수 없이 듣는 동안 거부감은 많이 완화되긴 했으나 공인의식에서 우러난 말로서는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니기는 한결 같았다.
이밖에 공인의식과는 거리가 있는, 간간이 튀어나온 말로는「 -한다」「-합니다」가 단연 두드러졌고,「내가」가 그 뒤를 바짝 따라붙고 있었다.
이런 말들은 「하겠다」「하겠습니다」와 「제가」로 바로잡혀야 할 것이었다.
후보자들의 공약도 문제되는 대목이 많았다. 하나마나한 것으로부터 실현불가능한 것에 이르기까지 너무 많이 쏟아져 나온 공약의 홍수, 이 홍수로 하여 흐려지는 것은 선거 분위기요 둔화되는 것은 유권자들의 판단력이었다.
유권자들의 투표성향은 또 어떠했던가? 네 사람의 후보자를 출신지역에서 예외없이 최다 득표자로 올려세운 투표결과는 아무리 좋게 설명하려해도 설명할 길이 없다. 궁색하게 설명된다 하더라도 유권자들 모두가하나같이 공인의식에서 투표한 것이라고 말해질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공직자들도 매스컴 종사자들도 지나친 염려에 빠져 필요 이상으로 굳어 있지나 않았는지, 과연 불편부당했는지 스스로 가늠해 볼 일이다. 선거는 끝났다. 그러나 우리들은 공인이기 보다는 개인으로서 드러내는, 의식데 반하는 원색적인 감정 그것의 대립과 갈등이 빚어내는 상처가 얼마나 깊고 아픈것인가를 실감했다.
이로써 우리는 시골 조합원이 그 시골에만 한정해 살고 있는 것이 아님을 확인한 셈이된다. 시골 조합원들이 총회를 한나절 뒤죽박죽 끌고간 것이나 우리들이 선거를 살얼음판 위로 한참을 끌로 다녔던 일은 모두 공인 의식이 부족했던데서 온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제 이상생활로 돌아와서 너나 할 것 없이 참으로 떳떳한 공인이 되는 법을 익히자. 너를 탓하기 전에 먼저 내안에 있는 고인의식의 싹을 틔우자. 싹이 틔워진 사람은 줄기가 뻗어나고 잎이 피도록 하자. 그것이 되어있는 사람은 거기에서 열매를 맺도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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