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에도 대학입학고사에서 수석을 차지한 영광의 얼굴들이 신문이나 방송 등을 통해 전국에 소개되고 있다.
이와 함께 불우한 서지에서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에 합격한 장한 젊은이들의 모습은 매스컴의 초점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지난 12일 밤 KBS2TV의「11시에 만납시다」프로를 시청한 사람들이면 누구나 숱한 역경과 시련을 이겨내고 대학입학시험에 합격한 자랑스런 젊은이들을 보고 아낌없는 격려와 축하의 박수를 보냈으리라 짐작된다.
그들중에는 28세의 만학도도 있었고 17세의 애띤 합격자도 있었다. 그런가하면 26세의 형과 17세의 동생이 나란히 합격의 영광을 안았으며 여학생도 한명 끼어있었다.
그들의 처지는 하나같이 힘겹고 고달픈 것이었다. 십수년간을 가방공장에서 하루 12~15시간씩 고된 노동을 하면서도 잠자는 시간을 아껴 공부에 몰두했는가하면 부모와 함께 누워 잘만한 방이 없어 집을 떠나 친천집에서 일을 도와가며 공부한 학생도 있었다.
또 형제가 함께 세차 (洗車)를 해주고 그돈으로 고향의 어머니를 봉양하면서 작은 돈과 시간을 쪼개어 공부를 했단다.
꽃 노점상을 하는 어머니를 따라 학교앞에서 꽃파는 일을 거들땐『한편으로 창피스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자식들을 위해 바로 그 일을 하시는 어머니께 대한 고마움으로 부끄러움을 참았다』는 여학생의 얘기는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이들이 졸업후 희망하는 인물은 법조계가 많았다. 그 이유는 힘이 없고 약한 사람들이 공정한 재판을 받고 가난하기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위해서라고 했다. 이들이 진정으로 판사나 변호사가 되려는 목적이 그러한 이유때문이라면 현직 법조인들의 반성과 각성이 있어야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들과 비슷한 처지에있는 젊은이들에게 권하는 얘기는 현실에 좌절하지 말고 끝까지 노력하라는것이었다. 또 처지가 어려울수록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기 쉬운데 자신이 최선을 다하면서 만사를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얘기도 있었다.
또 어떤 학생은 자기가 최선을 다해 그 목표에 도달했을 때 도와주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더라면서 우리 사회에 그토록 고맙고 불우한 사람을 도와주는 어른들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우리나라가 대담한 나라』라는 표현을 서슴치 않았다.
아마 이 프로를 지켜본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은 그들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해보았을 것이다. 더러는 그들의 처지를 동정도하고 퍽 어려운 환경에서 젊은이다운 일을 해냈다고 칭찬도 보냈을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도 더욱 분발해야겠다는 자극과 각오를 새로이 다지기도 했을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그들의 처지나 각고의 노력을 별로 대수롭지않게 받아들인 젊은이들도 전혀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과 비교해 현재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이나 모든 여건이 월등히 나은데도 그다지 고마움을 느끼지못하고 그토록 애써가며 학업에 전념해야할 필요성을 실감하지 못했던 학생들은 적어도 낯뜨거움을 느꼈을 것이다.
장한일을 해낸 젊은이들이 비단 그들뿐은 아닐 것이다. 전국적으로 찾아보면 그들보다 더 힘겨운 처지에서 그런일을 해낸 젊은이들이 부지기수일지도 모른다.
그들 모두 국민학교나 중학교를 다니다 중도에 그만두게 된 것은 그들의 탓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인한 가세의 기울어짐、많은 식구가 나누어 먹을 양식도 없는데 돈을 들여 공부를 할 수 없는 궁핍함 등이 그들의 학업을 중단시킨 것이다.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환경도 냉담하고 차가운 것이었다. 생활양식이 자꾸만 달라지는 영향도 있겠지만 이웃의 일에 무관심하고 도움을 호소하면 쉽게 외면해버리는 상황에서 결국 일어설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불굴의 용기와 끝까지 포기하지않는 인내와 노력만이 요청될 뿐이다.
이러한 곤경과 난관을 뚫고 몇대 일 혹은 몇십대 일이라는 대학입시의 관문을 통과한 젊은이들이야 말로 우리 사회와 국가의 희망이 아닐수 없다.
『하면 된다』는 신념 하나만으로 그런 힘겨운 일을 거뜬히 할 수 있는 젊은이들이 우리 사회에 많으면 많을수록 얼마나 희망적이고 다행스러운 일인가.
우리 주변에는 공부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처지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많이 있다. 어쩌면 그런사람들은 쉽사리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젊은이들을 찾아내고 그들이 목적하는 바 학업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활발히 추진되었으면하는 바램이다.
현재 우리 가톨릭교회 내에도 전국 각교구마다 불우청소년들에게 배움과 향학의 길을 열어주기위한 야학 (夜學)들이 소수 운영은 되고있다.
이들 야학들은 대도시 지역 몇몇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있는 실정이다. 배우고자하는 학생은 많아도 가르쳐줄 교사가 부족하며 교재나 학습에 필요한 도구들도 제대로 갖추기가 어려운 형편들이다.
물론 앞으로 우리 교회가 야학의 수도 필요에 따라 늘려나가야 하겠지만 우선 급한 것은 현재 설립돼있는 야학들만이라도 제대로 운영될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자원봉사하려는 교사들도 많이 나와야하겠고 주경야독하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용품은 공급해 줄 수 있어야 하겠다.
덧붙인다면 각 본당이나 교구차원에서 실시하고 있는 장학제도들도 꼭 필요한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주어지는 사업으로 그 질과 양을 늘려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리라 생각된다.
금년도 대학입학의 영광의 주역들을 지켜보면서 우리 교회의 야학들과 장학사업을 되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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