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가족 모두 주어진 고통을 잘 참아내며 지내던 어느 날 간호원으로부터 놀라운 말을 들었습니다.
『아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 이런 상태로 살기 위해 계속 아내를 고생시킬 수 없어요.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짐이 될 뿐이니 내가 죽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간절히 부탁하더라는 얘기였습니다.
이 얘기를 듣고 저는 호흡이 멎는듯 한 충격과 아픔으로 후들거리는 다리로 병실에 들어서니 그 이는 누운 채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남편 손을 잡고 눈물로 간청했습니다.
『여보! 당신이 살기 위해 받아야 할 고통들을 알아요. 내가 당신을 위해 힘든 삶을 산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당신이 나와 아이들을 위해서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살아 가시는 거예요. 당신이 이 세상에 없다면 보고 싶을 땐 어쩌죠? 누구와 대화를 나누고 누구와 의논하며 누구와 사랑을 나누죠? 저와 아이들은 당신이 필요해요. 우리를 위해 살아 주세요』
남편은 제 마음의 진실을 알았음인지 열심히 치료받고 기도하며 밝은 얼굴로 지냈습니다.
사고 후 일년이 지나자 남편의 기억력이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사고 경위를 상세히 기억해 내곤 그에 연루된 모든 이들을 저주하고 원망하며 지냈습니다. 그들을 죽이는 꿈으로 밤마다 시달리면서도 저주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남을 미워하는 상태가 곧 지옥이리라 생각되었습니다. 지옥을 자신의 내면에 간직하고 있으니 하느님의 사랑이 자리할 수 없었고 사랑이 없으니 치유가 될 리 없었습니다. 저의 조언이나 충고ㆍ기도ㆍ좋은 서적 등도 그이의 마음을 하느님께로 돌려놓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몇 개월을 지내다가 대구 대건학교 강당에서 은혜의 밤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남편과 함께 갔습니다.
강당에 들어서자 단상 벽면에는 한번도 보지 못한 모습의 고상이 걸려 있었습니다. 다른 고상과는 달리 예수님의 모습이 무척 고통스러워 보였고 축늘어진 모습이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
『주여! 무엇이 당신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는 겁니까?』아무런 불평도 않으시고 수난 당하신 예수님을 직접 목격 한 것처럼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잠시 후 남편을 쳐다보니 남편은 피보다 진한, 가슴에서 토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울고 있는 남편의 눈물이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의 머리에서 나는 핏방울 같다고 느껴졌습니다. 남편은 진정한 회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한갓 껍데기뿐인 육신이 불구가 되었다고해서 이 세상 모두가 암흑이 된 것은 아니야. 겉으로 멀쩡하면서도 마음이 오그라든 불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이토록 진한 눈물을 흘리는 남편을 위해 나는 한 자루의 초가 되고 한 줌의 소금이 되자』
이런 생각을 하고 남편을 바라보니 남편은 예수님의 모습을 그대로 닮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에게 고통을 더 주시고 고통 중에 있는 자들을 더 사랑 하신다」는 말을 들을 때면 이해하기가 어렵웠습니다. 그런데 이때 그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고통을 겪지 않고는 하느님을 만날 수 없고, 고통으로 인해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 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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