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 국회의원으로 잘 알려진 H씨는 천주교 신자다. 그런데 그 국회의원의 지역구에서 사목하다 대전으로 오신 신부님께서 H의원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선거 때인데 하루는 H의원이 성당에 왔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신부님께 자기도 천주교신자이며 본명은 ○○이라고 소개를 하더라는 것.
이 말에 신부님이『그러면 주의 기도를 외어 봐요』하고 말했더니『그런 건 못외워요. 그러나 어쨌건 영세는 받았습니다』하더라는 것이다.
「주의 기도」도 못 외우는 국회의원이며 천주교신자인 H씨. 나는 그가 TV나 신문에 오르내리는 장면을 볼 때마다「엉터리 신자」가 무엇인가를 새삼 느끼곤 한다. 그는 무엇을 노리고 천주교에 입문하여 영세를 받았는가. 묻지 않아도 뻔한 계산이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은 이 사실을 알면 어떻게 그런 사람에게 교회가 영세를 주었는지 의문을 표시할 것이다.
물론 교회법상 그런 경우, 영세가 가능한지 어쩐지는 차치하고라도 영세를 받기위해 수개월씩 신부님이나 수녀님들께 교리를 배우고 많은 기도문과 미사경을 외우며 수고한 사람들에게는 불평이 나올 수 있다.
그가 곧 죽게될 대세의 대상자도 아닌데….
또 이런 경우도 있다.
모 정치인은 부부관계가 불확실한데 영세를 받고 천주교신자 행세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영세의 형식적 요건을 갖추었을지라도 세상에 알려진 그의 부부관계로해서 오해를 받을 소지가 많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모(某)저명인사도 알려진 천주교 신자다.
그런데 그가 세상을 떠나고 얼마 안있어 부인과 아들 사이에 재산 싸움이 벌어져 송사(訟事)까지 붙었다. 알고보니 그 아들은 본부인의 아들이고 지금의 부인은 생모가 아니였다. 이를 두고도 오해의 시선은 있다.
물론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고 그 정신에 따라 교회는 모든 죄인들에게 문호가 열려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영세의 조건은 이 제도를 만든 이상 존중돼야 하며 그 조건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히 적용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국회의원 금배지를 달았다고 해서 재산이 많은 사람이라고 해서「주의 기도」를 모르는데도 영세를 주는 일은 곤란할 것 같다. 왜냐하면 사이비 신자를 대량생산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렇게 해서 영세를 받은 사람이「거듭 태어난」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신앙에 헌신하고 이웃으로부터 사랑을 받으면 좋다. 그런데 선거 때 표나 얻으려고 계산적으로 영세를 하여 주위의 불신을 받는 사람, 권력자의 앞잡이가 된다든지 반민주적 작태로 국민의 원성을 받는 사람이 된다든지… 이거야 말로 우리 신자들의 마음을 슬프게하고 교회에 누를 끼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이런 사람일수록 성당에 와서는 성호를 그으며 천주교신자 행세를 하고 절에 가서는 부처님 앞에 합장을 하며 불자(佛子)노릇을 한다. 그리고 개신교에 가서는 장로교 신자가 됐다, 침례교신자가 됐다 하며 필요에 따라 옷을 바꿔 입는다.
나는 실제로 12대 국회의원 선거 때 이런 사람을 보았고 현재도 목격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중앙정계의 어떤 지도자는 자신은 천주교신자로, 가족은 기타 등등으로 역할분담의 인상을 주는 사람도 있다. 내가 이런 사람에게 불쾌감을 갖는 것은 신앙의 결벽증(潔癖症) 때문일까?
진짜 우리 주변에는 사이비신자를 너무 많이 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것은 왜 저런 사람에게 영세를 주었을까 하는 것이다.
한때는 전두환 전대통령이 천주교신자라는 소문이 나돌았었다. 어려서 유아 영세까지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가 천주교신자라는 말이 나올 때 나는 그 신앙결벽증 때문에 마음으로 갈등을 일으켰었다.
『어떻게 그런 인물이….』
이런 탄식은 나뿐이 아니었을 것이다.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그가 천주교신자가 아니라는게 밝혀져 기분이 좋았다. 그가 청와대에서 백담사 절로 들어감으로써 다시한번 천주교신자가 아님이 확인되었을 때, 나는「그러면 그렇지…」하고 마음의 손뼉을 쳤었다.
아마 나의 이 같은 마음은 다른 모든 신자도 한가지였을 것이다.
하기야 천주교신자라고 해서 인간임에는 틀림없고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살아가면서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다.
그래서 때로는 하느님을 외면하고 성모님의 가슴을 아프게하면서 방황할지라도 다시금 일어나 주님의 손을 잡으려는 사람이 아름답게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도 천주교신자만은 엉터리가 없어야 하고 이웃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지 않으며 국민들로부터 욕을 먹어서는 안된다는 나의 이 생각은 역시 신앙의 결벽증 때문일까? 나의 신앙을 너무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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