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88년 1월 10일자 가톨릭신문 5면 독자제언란을 읽은 후 동감이 절실하여 펜을 들게된 대치동본당 소속남궁 금숙(미카엘라)입니다.
지난 한해를 돌아볼 때 저는 가톨릭 신자로서 지극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수 있었습니다. 박종철 사건 당시「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용기, 그리고 명동성당 앞에서 그 무수한 전경들과 마주한 몇몇분의 프란치스꼬회 수도자들, 철거민들을 감싸주는 따뜻한 손길, 그 모든 것은 가톨릭이 항상 가장 가난한 자, 약한자의 편에 서신 작은 예수그리스도이셨습니다.
87년말 예비신자가 다른해보다 많아진 것 역시 이 사회에서 행해졌던 정의 실현모습이 직접 간접으로 전교를 많이 도왔다고 느꼈고, 가톨릭신문을 통해서도 읽은적이 있었습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주교회의의 담화문은 더욱더 제 마음을 떳떳하게 했고 진정으로 가톨릭의「넓은 사랑」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평소 석간일간지를 남편보다 항상 먼저 일게되는 저는 이와같은 류의 소식을 신이나서 가족들에게 전하곤했죠. 남편도 그런 얘기를 들으면 아주 좋아했답니다. 어쩌다 타종교인과 종교토론이라도 생기면 져본적이 없는 사람이죠. 그러던 어느날 대통령 선거에 관한 평협의 주장과 이백이명의 사제단의 특정후보지지 성명을 들려줘야 했습니다. 남편은 지금까지 한번도 사제님, 신부님 등의「님자」를 잊어본적이 없고 오직 이세상 어느 종교인보다 맑고 순수한 너무나 인간적이며 영적인 존재로 존경하던 그분들에 대한 열정이, 말할 수없는 불신과 비열한 정치적 도구로 전락되는 순간을 목격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변명을 하려해도 제 자신도 앞뒤가 맞질 않았죠.
평협의 발언은 정치 사꾸라의 일부 평신도라서 그렇다고 일축할 수도 있겠지만, 사제들의 특정후보 지지성명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교회라는 신성한 성전이 집단적 행동의 선동으로 정치에 이용되어선 안되고, 더더욱 선택의 자유가 있는 민주주의라는 이념을, 교회의 지도자들이 그 선택의 자유에 역행하는 듯한 지지성명 따위의 못난 행동은 신도들 그리고 가톨릭을 신뢰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행동으로 또 다른 일방적 독재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런지요? 순명을 가장 중요한 보람의 자존으로 하는 우리 가톨릭이 주교님들의 뜻을 무시하고도 사제직 수행은 가능한지요? 공적으로 잘못이 인정되면, 공적으로 사과하는 것이 또한 순수한 양심의 대도가 아닐런지요. 종교는 성직가, 정치가, 혹은 다른 누구의 일방적 소유물이 아니란 것은 인간의 존엄성과도 일치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사람마다의 개성을 가능한한 존중하는 편으로서 때때로 신부님들의 그릇된 면모를 발견하게되면『신부님도 우리와 같은 인간인데 뭐』하고 이해했는데 이점은 신자들이 모이면 어쩌다 나오는 말이며, 신부님께서도 간혹 당신의 잘못이 있다면 그렇게 이해를 요하셨습니다.
이번 문제 역시 그런 식으로 이해하고 지나쳐 버려야할 단순한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저와 같은 심정으로 갈등을 겪는 형제 자매들을 위하여 그 신부님들게서는 어떤 메시지가 있었으면 하고 죄송스럽게도 감히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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