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제목으로 전에「司牧」지에 나의 글이 실린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때 쓴 글은 일종의 논문의 형식이었고 여기에 쓰는 글은 한 수상이다. 그것보다도 생각이 빈약한 나로서 평소에 마음속에 늘 품고 있는 것을 한번쯤 더 되풀이 말한다고 해서 크게 나무라시지는 않을 것으로 믿고 있다.
우리는 세상이 어지럽고 살기가 어려울 때마다 어떤 이상사회를 머리 속에 그려 보게된다. 오늘날에는 그러한 이상적인 사회, 살기좋은 사회를 건설하려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제일 강조하는 것이 물질적 분배의 문제인 것같다. 이제 그 기능의 한계가 드러나서 거의 파산지경에 이른「공산주의」도 그러한 과정에서 생긴 이념일 것이다.
공정하고도 합리적인 물질적 분배가 이루어지는 사회가 출현한다면 그것도 굉장한 일이다. 그러한 사회는 분명 살기좋은 사회일 것이다. 그러나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우리가 마음속에서 그려볼 수 있는 정말로 살기 좋고 행복한「이상향(理想鄕)」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러한 조건은 가장 소극적이며 최소한의 조건일 수 밖에 없다. 사회제도가 잘돼 있어서 살기 좋은 사회란 그저 그렇고 그런 정도로 훌륭한 사회이다. 정말로 훌륭한 사회란 사회의 구성원인 한 사람 한사람이 참된 뜻에서 보다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적극적으로 애써 노력하는 사회이다.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 모두가 성인(聖人)이 되는 사회야말로 우리가 지상에서 실현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하고 평화로운 사회가 될 것이다.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길이 꼭 둘이 있으며 이 어느 쪽도 우리가 등한히 해서는 안된다. 그 하나는 정치 경제 사회적인 제반 여건을 개선해 나아가는 길이요 또 하나는 우리의 마음안을 보다 좋고 착한 쪽으로 수련해 나아가는 길이다. 전자는 집단적 외향적인 운동이 될 수 있지만 후자는 궁극에 가서는 사회 구성원 각 개인의 마음 안의 문제로 귀착될 수 밖에없다. 사회의 정치학에 못지않게 우리의「마음안의 정치학」도 긴요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후자가 더 근원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오늘날 사회에서 큰 목소리로 들려오는 것은 전자에 관한 목소리 뿐이다. 후자에 관한 생각과 소망은 아직도 침묵 속에 묻혀 있다.
모두가 성인(聖人)이 되는 사회. 말이 좋지 도대체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하고 반문하는 소리가 들려 오는듯하다. 그러나 이 일의 불가능만을 믿는이는 사회의 일을 사람의 능력에만 국한해서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느님의 은총의 손길을 믿으려하지 않는 사람이다. 또한 이러한 엄청난 이상이 짧은 시간 내에 이루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약에 우리가 이 이상을 우리의 시야에서 잃지 않고 지속적으로 밀고 나가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이일이 이룩되고야 말날이 오리라고 나는 믿고 있다. 10년이나 1백년쯤으로 이일을 해결하려고 한다면 성급한 생각이 될 것이다. 5백년도 오히려 짧을 것이다. 천년도 좋고 2천년도 좋다. 장구한 시간과 세월은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기적을 이룩한다. 아무리 완만한 곡선을 그리더라도 아무리 갈지자를 그린다 하더라도 인류 역사의 방향이 크게보아서 영적으로 타락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상승하는 방향이라면 먼 앞날에 실현될 사회의 윤리적 수준도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경지에 가게 될 것이라도 믿어서 안 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역사의 방향을 잡는 일은 순전히 우리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이다.
모두가 성인(聖人)이 되는 사회의 실현. 그것은 행복하고 평화로운 사회일 뿐만 아니라 다시없이 아름다운 사회이기도 하다. 우리 천주교회의 목표와 사명도 바로 여기에 두어야 할 일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이 일이 아무리 어렵고 또 요원한 일이라도 그러하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하고 우리가 조석으로 드리는 기도의 뜻이 바로 이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너희들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같이 완벽하게 되라」고 가르치신 예수님 말씀의 뜻도 이런 뜻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프란치스꼬」성인처럼 대성인 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러나 성인에도 많은 등급이 있을 것이다. 「아우스딩」성인과 같은 위대한 성인이 그리 흔하게 나타날리야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남몰래 덕을 쌓아 이제 조촐한 성인의 품성을 갖춘 사람이 세상에 그리 많을 리가 없다고 단언할 수도 없는 일이다. 나는「성인」이란「매우 착한사람」이라고 정의하고자 한다. 그런 사람은 작은「성인」소리를 들어도 될 것으로 생각한다. 「프란치스꼬」성인은 이를테면「매우」란 부사를 한 열번 쯤 붙여야 하는 착한 분이었으리라.
모두가 성인(聖人)이 되는 사회를 이룩하는 일은 집단적으로 추진될 성질의 일이 아니다. 이러한 풍조가 사회에 어느 틈에 퍼지는 것은 좋지만 궁극적으로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결심에 달려있다. 송충이를 한마리 한마리 잡아 없애듯이, 모 한포기 한포기를 정성들여 꽂듯이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을 표 안나게 교화시켜나가야 한다. 한 가정이라도 더 성가정이 되도록 해나가야 한다. 한사람이라도 더 선행을 하되 남이 모르게 해나가야 한다. 떠들어가며 하는 선행은 그만큼 선행의 가치가 감소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어느날 마음이 착하지 못한 최후의 한사람까지 마음이 착하지 못한 최후의 한사람까지 마음이 착한 사람이 되 버린다. 땅위에는 그야말로 기적처럼 지상낙원이 실현된다. 그런데도 그 까닭을 아무도 모른다. 왜? 그렇게 해온 이들이 그 일을 소중한 비밀처럼 마음속 깊은 곳에 품고만 있기 때문이다.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이들이 날로 늘어만가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이러한 생각을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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