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전의 일이었다. 『신부님이 오셨습니다. 여기로 오시죠』라는 전화를 받았다. 근무시간 중에 신부님이 오셨으니 마음이 흩어져 초점이 모이지 않는다. 신앙과 생활이 일치하여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나 역시 신앙과 생활이 일정한 선을 두고있기에 갑작스러운 신부님의 출현은 이처럼 나를 당황하게 하는가보다. 『무엇때문에 오셨을까?』 본당활동이 부진하다고 여기까지 꾸중하러 오실리없고 아마 지나시다가 들리신 것이겠지. 막상 뵙게된 신부님은 기대와는 달리 본당신부님이 아닌 인자한 느낌을 주시는 학자풍의 처음 뵙는 신부님이셨다. 인사를 하자마자 신부님은 증권투자를 하신다는 것이다. 『아니 신부님이 증권투자를 하신다고?』 순간 로만칼라를 버젓이 하고 계신 신부님을 보면서 생각했다. 그러지 않아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증권투자하면 일확천금이나 버는, 세상에 없는 투기꾼으로 아는데 아무리 서품을 받으실 때 「청빈의 허원」은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신부님까지 이러시면 어쩌나하는 안스러운 마음이 생겼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증권투자가 어디 나쁜 것인가. 증권투자는 소득재분배라든지, 유휴자금을 생산자금화 한다는지 또는 물가인상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며 국가에서도 증권인구 저변확대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주식은 자본주의의 꽃이라고들 하지않는가. 뿐만아니라 사제도 우리와 같이 돈이 필요하시겠지라고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해도 재물에 관심이 있는 신부님을 생각할 때 나의 마음은 편안하지를 않았다. 나는 건성으로 신부님과 대화를 하며 예의만을 지키고 있었다.
바로 그때 이익만을 위해서 증권투자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나에게 신부님은 정신이 번쩍드는 말씀하셨다.
신부님이 증권투자를 하는 이유는 이익이 목적이 아니라 강론준비를 위해서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십여년 그 많은 사람과 대화하면서 이익이 목적이 아내면서 증권투자를 하는 분은 난생처음 만나본 것이다. 사실은 옳은 말이다. 날로 다변화하는 현대사회를 이해하려면 경제를 알아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증권투자라는 「장」이 제일 적절하다고 생각하셨다는 것이다. 각기 다른 분야의 전문가인 평신도를 앞에 두고 강론하시는 신부님의 고충과 말씀의 선포를 위해 말씀과 함께 생활하시기 위해 전지하게 노력하시는 모습을 보며 『아 나는 천주교신자다』하는 자랑스러운 마음이 가슴에 번지기 시작했다. 언젠가 가톨릭신문에서 「긴 강론은 마귀의 소리」라고 쓴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무학대사와 이성계의 농(弄)에서 돼지 눈으로 본 세상은 모두가 돼지로 보이고 부처의 눈으로 본 세상은 모두가 부처로 보인다더니....
오후 3시.
빌딩사이로 일렁이는 명동의 인파를 보며 한줌 흙으로 변할 「해골들」 속에서 자기보다 큰 십자가를 메고 언덕으로 오르는 그리스도를 향해 나는 오랫동안 허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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