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7일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오랜 침묵을 깨고「오늘의 사회현실을 우려하는 우리의 호소」라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이 호소는 인간이 정의롭고 평화스러운 사회 안에서 행복하게 현대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근원적으로 창조주 하느님의 뜻이요 모든 사람들의 염원이지만, 작금의 우리의 사회현실은 각 분야에서 파행과 혼미를 거듭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은 현 정권의 비도덕성에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정의와 평화라는 말은 누구나 쉽게 입에 올리고 있으나, 정작 사회는 그와는 동떨어진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다. 5공을 청산하고 민주화ㆍ인간화를 실현시킬 것을 다짐한 제6공화국은 5공의 청산이나 악법의 개폐를 미루고 민자당의 출범과 함께 치룬 대구서갑구의 부정선거와 지난 6월의 임시국회에서 26개 법안의 날치기통과로서 법의 권위를 땅에 떨어뜨려 현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고 있다.
게다가 현 정권은 국민에게 공약한 금육실명제 등 각종의 시책은 그때그때 임기응변식의 대응으로 일관성이 없으며, 북방정책도 대통령의 7 ㆍ7선언이나 담화에서 밝히고 있는 민족의 동질성의 회복을 위한 노력보다는 정략적으로 악용하여 사회혼란을 가중시키고 시국사범을 양산함으로써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게 하고 있음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정평위는 이러한 사회현실을 직시하고 통일문제, 경제문제, 인권침해ㆍ인간성 황폐화 및 환경ㆍ공해문제로 나누어 그 견해를 밝히고 있다. 이러한 사항들은 이 땅에서 삶을 누리고 있는 우리 모두의 관심거리이고, 또한 사람다운 삶을 누리기 위하여 시급히 해결지어야 할 과제들이다.
소련의 개혁정책으로 동서화해의 기운이 감돌고 동ㆍ서독의 통일 실현 등 탈냉전시대에서 유독 우리 민족만이 남과 북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에 정평위는「조국의 통일문제는 어떤 정권의 이익이나 정략으로 이용되어서는 안되고 오로지 민족적 화해와 사랑, 상호이해와 우호적 포용」으로 감쌀 때에만 가능하다고 밝히고 남북한 정권은 조국통일을 가로 막거나 어렵게 하고 있는 국내법의 개폐작업과 통일염원인사들의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경제문제는 인간의 현세생활에서 가장 절실한 문제이다. 인간이 빵만으로 사는 것은 아니지만 최저한의 경제생활을 영위하기 힘든 때에는 참혹한 현상을 자아내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경제 정의가 실현되지 아니하는 사회에서는 계층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사회불안의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의 공동이익을 무시한 개인이나 집단의 이기주의적 생활태도 내지 경제활동에서 비롯되는 것임은 물론이다. 정평위도 이러한 현실에서 정부는 경제정의실현을 위한 정책과 경제적으로 어려운 계층을 위한 과감한 시책을 펴는 한편 경제사법에 대한 공정하고도 엄격한 사법적 처리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정평위는 또한 정의와 평화가 실현되지 않은 사회에서는 인권이 유린되고 범죄가 횡행하며 인간성이 황폐해지는 것은 자연적 현상임을 밝히고 있다. 오늘날 우리의 사회현실에서 갖가지 범죄가 횡행하고 인명경시의 풍조는 물론 공권력에 의한 인권유린, 최루탄의 남용과 이에 대응하는 이른바 운동권의 화염병 투석이 일상화되고 있는 상황은 하루 속히 바로 잡아져야 한다.
이에 우리 사회에서는 도덕성의 회복, 불신풍조의 일소, 선량한 인간성의 함양 등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일이고, 이를 위하여는 무엇보다도 사회지도층의 각성이 요구된다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환경ㆍ공해문제는 고도의 과학기술의 발달과 물질문명의 추구에서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커다란 병리현상이라 할 수 있다. 체르노빌의 원자로 사고나 바젤의 독가스창고의 화재사고로 엄청난 국제적인 재앙을 불러 일으켜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드러내었다.
1990년 세계 평화의 날에 발표한 교황성하의 담화문은 창조주 하느님과 함께 하는 참된 평화가 무엇인지를 잘 가르쳐 주고 있다. 하느님께서 인류공동체가 생을 영위하도록 마련하여 주신 자연계를 훼손하고 오염시키는 행위는 인류전체의 삶에 대한 위협이 되고 있음을 인식하여야 한다. 환경오염을 방지하기 위하여 우리가 극도의 물질주의와 편의주의 그리고 공동체를 외면하는 이기주의적 사고방식의 생활태도를 버려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엄숙한 명령이다. 그리하여 정평위는 환경보전운동을 경건한 신앙심과 진정한 정의ㆍ평화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펴나갈 것을 다짐하고 있다.
이러한 정평위의 호소에 우리는 귀를 기울이고 실천에 옮기도록 힘써야 한다. 하느님의 창조질서가 유지되고 밝은 사회건설을 위하여는 먼저 우리 신앙인의 회개와 희생이 요구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생활화하여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소명임을 자각하고, 특히 사회지도층에 몸담고 있는 신자들의 각성을 촉구하고자 한다. 그리고 정평위는 계속해서 사회병리현상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내려야 하는 교회의 역할을 보다 성실하게 수행하여 주기를 빌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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