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것 없이 풍요로울 때는 하느님과 나 사이에 스스로 벽을 치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이 다가 오실 수 없다는 것을 깨닫지도 못하고 인간적인 목표를 향해 걸어가면서 적당히 허울 좋은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하느님의 진리보다 인간적인 계산을, 하느님의 사랑보다 남편과 자식과 나 자신을 더 사랑했습니다.
고통 중에 있는 이웃을 보면 다행히 내가 아니라는 안도감에 감사드리고 평생동안 이런 일이 내게만은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하는 자였습니다. 제가 직접 인생의 각본을 만들고 하느님을 출연시켜 하느님의 배역을 적절한 시기에 좋은 것만 주시는 분으로 적당한 위치에 두고 연출ㆍ구성ㆍ감독을 혼자 다 하면서도 그것이 지극히 당연한 듯이 누리고 살았습니다. 하느님을 먼 곳에 두고 있었기에 알지 못했고 나의 세계에서 살아왔을 뿐 하느님의 사랑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이 없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당신 사랑 안으로 이끄시기 위해 가슴아프시지만 우리에게 고통을 겪어 보게 하시는 아버지의 숨결을 느꼈습니다. 그날 밤 우리는 많은 것을 깨달았고 내적인 치유와 사랑을 받고 돌아 왔습니다. 그 다음날 남편은 『이제 그들을 미워하지도 원망 하지도 않는다. 모두 네 탓으로 했던 일을 내 탓으로 돌리고나니 이렇게 마음이 평안하고 악몽에 시달리지도 않으니 살 것 같애』
그 이의 지옥 유람은 끝이나고 저의 멀었던 눈이 뜨이니 가슴가득 하느님의 사랑이 들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날 이후 대구 계산동 농림한의원 원장님께서 사랑과 기도로 지어 보내주시는 한약을 기도하면서 달이고, 기도하면서 먹고 물리치료ㆍ운동치료를 열심히 했습니다. 남편은 나날이 눈에 띄게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의 손길로 어느 한 순간 기적이 일어나 치유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었습니다. 나의 고통을 온전히 주님께 봉헌하는 생활과 더불어 마음이 사랑으로 충만할 때 치유의 기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기적보다 눈으로 확인되지 않으나 마음으로 확인되어, 절망이 기쁨으로 변하는 것이 참 기적이 아닐까 생각 되었습니다. 평화와 사랑이 넘치는 그의 얼굴은 저에게 기쁨을 주었습니다. 남편과 저는 병원내 환자 중 외인에게는 권면을, 쉬는 자에게는 성물과 서적을 전하며 그분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보호자가 없는 환자들에게는 반찬을 나누어 주고 그 분들을 힘 닿는대로 보살펴 드렸습니다. 어떤 분은 스스로 자신이 냉담자라고 도움을 청하셨습니다.
그분은 그 후 가족 모두 영세를 하여 성가정을 이루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사고 후 2년만에 척수신경 손상으로 인한 사지마비 환자들 중 유일하게 목발을 짚고 자신의 힘으로 걸어서 퇴원을 했습니다.
걷는 것 외의 모든 기능은 정상에 가깝도록 완치되었습니다. 2년만에 우리 가족은 함께 생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풀이 없던 모습에서 이슬을 머금은 풀잎처럼 싱싱한 웃음을 피웠습니다. 『우리 아빠는 의지가 강한 사나이다. 아빠! 사랑해요. 하느님 감사합니다.』하며 까칠한 아빠의 턱에 볼이 빨갛게 되도록 부볐습니다.
남편이 퇴원하고 나니까 훨씬 시간도 힘도 적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의 사고로 중단했었던 성서공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성서가 글이 아닌 말씀으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말씀은 제게 힘과 인내와 큰 사랑을 주었고 마음의 상처를 승화시켜 바르게 살수있는 지혜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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