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들이 모여 교회 걱정을 하며 얘기를 나눌 때 으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화제를 하나 들라면, 그건 아마 사제에 대한 비판일 것이다. 『평신도들은 모이면 사제들을 비판하고, 사제들은 모이면 주교님을 비판하고 주교님들은 모이면 차마 교황님을 비판할 수는 없으니까 자기들 가슴만 친다.』는 말은 재치꾼의 우스개에 지나지 않기는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고백의 기도에서 입으로는 「내탓이오」를 되풀이하여도 마음 속으로는 천연덕스럽게 그건 네 탓이라고, 그건 윗분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평신도 문제를 주제로 다룬 1987년 세계 주교 시노드에 앞서 교황청 평신도 위원회가 그해 5월 로마 근교에 있는 로카디 빠빠에서 평신도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세계 평신도 대회를 개최한 적이 있는데, 전 세계에서 모인 평신도 대표들도 이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어서 성직자에 대한 비판을 진지하게 털어 놓았었다. 함께 참석하고 있던 고위 성직자들은 이러한 비판이 단지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평신도들이 바라는 사제상에 대한 소박한 소망과 기대의 표현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이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음은 물론이다.
회의를 마무리하면서 주최측의 요청에 따라 성직자를 대표하여 세계 평신도 대표들의 비판과 소망에 대한 응답에 나선 파키스탄의 유명한 코르데이로 추기경의 말씀은 그야말로 촌철살인(寸鐵殺人) 그것이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구준에 걸맞는 사제를 모시기 마련입니다』
사제가 조금이라도 평신도의 불만의 대상이 되지 않게 항상 바람직한 사제상을 실현하도록 하는 것은 사제만의 일이 아니라. 아니 누구보다도 바로 평신도 자신의 일인 것이다. 따지고 보면 성직자든 수도자든 모두가 평신도의 가정에서 태어나 거기서 성장한 평신도의 자신이 아니든가? 대사제이신 예수께서도 평신도의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하시지 않았던가?
가정은 사회의 기초일 뿐만 아니라 교회의 기초이다. 우리 모두가 사회와 신앙에 대해 배우는 최초의 학교가 바로 가정이며, 이는 성직자에게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성소 육성의 의무는 전 크리스찬 공동체에 속하는 것이며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완전한 그리스도교적 실생활로써 촉진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가정을 이 믿음과 사랑과 신심의 정신으로 살아가며 가정들이 마치 「예비 신학교」와 같이 될 때. 이 일에 크게 이바지하는 것이다』(사제양성에 관한 교령 2항).
그러므로 우리 교회의 사제상은 우선 우리 가정의 예비 신학교로서의 수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제는 서품과 더불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완성에의 길에 첫 걸음을 내딛을 뿐이다. 사제는 친교의 교회 안에서 끊임없는 완성 과정에 있는 것이다. 사제양성은 서품 후에도 계속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는 하느님의 가정인 교회의 모든 가족이. 주교ㆍ신부ㆍ수도자ㆍ평신도 모두가 함께 책임이 있는 것이다.
자기가 그리고 있는 바람직한 사제상을 위해 비판을 말하기에 앞서 우리는 과연 그런 사제상을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예비 신학교인 우리의 가정으로부터 신학교를 거쳐 서품 후에 이르기까지 사제 양성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신앙 선조들은 이 땅에 사제를 모셔오기 위해 온갖 역경을 무릅쓰고 심지어 목숨마저 내걸지 않았던가?
우리는 과연 사제들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사제들을 위하려는 갸륵한 정성이 지나치게 물질적인 면에만 치우친 나머지 본의 아니게 사제의 영적발전에는 오히려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는가?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에서의 베드로처럼 우리는 하느님이신 그리스도를 고백하려고는 하지만 수난 받는 그리스도는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지는 않았는가?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마태 16.16)라고 말씀드린 바로 그 베드로가 예수님으로부터 수난에 대한 말씀을 듣고는 예수님을 붙들고 『주님, 안됩니다.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마태 16, 22)하고 말리었다.
바로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부르시지 않았던가?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마태 16, 23)
마침 로마에서는 「오늘의 상황에서의 사제 양성」을 주제로 제8차 세계 주교 시노드가 9월 30일부터 10월 28일까지 개최된다.
사제 양성문제는 지난 1987년의 제7차 세계주교 시노드의 주제인 평신도 문제의 당연한 귀결이라고 볼 수 있다. 사제의 양성과 평신도의 양성은 한 동전의 양면과도 같기에 말이다. 훌륭한 사제는 훌륭한 평신도를 만들고 훌륭한 평신도는 훌륭한 사제를 만든다.
평신도의 문제처럼 보이는 것이 따지고 보면 실은 성직자의 문제요. 성직자의 문제처럼 보이는 것이 따지고 보면 실은 평신도의 문제가 아닌가?
이번 시노드의 성공을 위해, 그리하여 복음화 3천년대의 바람직한 사제상을 실현하기 위해 하느님의 온가족이 함께 노력하도록 특히 10월 로사리오 성월에 성모님께 전구를 청하여 기도하자. 교황 성하께서 작년 서울 세계성체대회때 평신도들에게 간곡히 당부하신 대로 언제나 우리의 사제들을 위해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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