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때가 되면 부모님 생각이 더 새롭다. 신부가 되는 것을 그토록 반대하셨으나 서품식이 끝난 후 술잔을 바치던 나를 축복해 주시던 아버님, 그 많은 어려움에도 묵묵히 기도하시며 뒷바라지를 해 주신 어머님, 명절 때 남들은 모두 선물을 싸들고 고향으로 가는데 장남을 기다리고 계실 부모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명절전야는 우리들 모두가 효자가 된다.
나 같은 불효자식도 명절전야 부모님 생각이 나는데 찾아올 자식이 없는 할머님 할아버님은 얼마나 외로우실까.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할바엔 내 주위의 외로운 어른들이라도 찾아뵈면 어떨까. 그분들을 부모님으로 생각하고 『찾아오지 못하는 자식들 대신 제가 찾아왔습니다』하는 인사를 드리고자 시작한 것이 십여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서울의 봉천동 달동네에서 시작하여 전주의 노송 등, 숲정이까지 내가 사목하는 주위의 어른들을 찾아나섰다.
설날과 추석전야 젊은이들 몇이랑 정성스레 조그만 선물꾸러미를 들고 혼자 사시는 할머님 할아버님을 찾아 인사를 드린다. 『아들 대신 제가 찾아왔습니다. 너무 상심마시고 만수무강하십시요』 오손도손 말씀을 나눌 시간은 없지만 부모님께 인사드리지 못하는 죄스러움은 조금 가시는 기분이다. 두 손을 꽉 잡고 눈물을 글썽이시는 이 할머님의 모습을 보신다면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서도 기뻐하시겠지.
보좌 때엔 젊은이들과 함께 선물을 준비하지만 본당신부가 돼서는 수녀님들이 도와주고 직접 준비하시니 메뉴도 다양하다. 처음엔 할머님들이 좋아하시고 필요하시다고 생각되는 것을 주문한다. 눈깔사탕, 참빛, 손톱깍기, 수녀님들은 기가막힌 모양이다. 어린시절 할머님과 단둘이 산 적이 있다. 심심하시면 육백도 쳐드리고 침이 마르시다고 눈깔사탕을 항상 옆에 두면 퍽이나 고마워 하셨다. 선물로 들어온 내의를 한동안 모으면 대충 방문할 어른들 숫자와 맞는다. 어릴 때 우리 할머님은 남자 내의를 입으셨는데 요즈음엔 그런 걸 할머님께 드리면 실례라고 수녀님들이 귀띔해 준다. 과일바구니, 과자 바구니, 수녀님들의 손길이 닿으니 한결 때깔이 좋다. 분가해 나간 할머님들이 신부님 생각이 난다며 찾아오신다. 삶의 외로움을 기도로 달래며 살아가시는 분들. 조그만 정성에 과분하게 고마워하신다. 새로임지인 이곳 신태인 본당에서도 수녀님은 계시지 않지만 누구라도 붙잡고 다시 시작해 볼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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