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교구간의 벽이 높다고들 말한다. 교구간의 벽이 높다는 말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적어도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긴급한 문제에서만은 이 교구간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이번 수해를 보면서 이 확신은 더욱 강해진다. 60년만의 대홍수를 맞은 중부지역의 수해에 대하여 모든 교구들의 즉각적인 나눔이 구체적으로 실천되고 있음을 본다. 수재민들을 위한 나눔을 각 교구에 호소한지 하루만에 여러교구가 피해를 당한 교구에 신속한 응답을 보내왔다.
이는 초대교회에서 여러 교회공동체가 여타지역의 대기근을 위하여 막대한 헌금을 하였다는 사실이 오늘 한국교회에서 구체화되고 있는 증거이다(사도11,27:2고린8,20).
예년에는 주일특별헌금을 하고 난후에 이를 취합하여 보냈었지만 금년에는 즉각적인 응답을 한 교구가 여럿 있는 것을 보면 이미 여러 교구에서는 재해를 위하여 미리미리 준비하여온 증거를 찾을 수 있다(2 고린 9,5:1 고린 16,1). 하긴 지난 10연년간 한 두 해를 빼고는 거의 매년 재해가 있었기에 재해대책이 교구차원에서 체질화 되어온 결과이기도 하다.
또 하나 특기할만한 사실은 직접 재해를 당한 교구들이 더 많은 재해를 당한 교구를 지원하고 있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바오로 사도가 강조하였듯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까지도 희생으로 남과 나누고 있다는 이 사실은 그리스도인의 본질적인 애덕실천이 뚜렷이 나타난 증거라고 생각된다(2 고린8,2).
또한 그간 많은 재해를 당해왔기에 이미 교구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은 몇몇 교구들이 막대한 기금을 보내온 일이다. 이들 교구는 어느 교구보다도 신속한 응답을 하였다.
흔히는 넉넉한 곳은 지원을 하지 않는 법인데 이번 수해에는 흔히 넉넉하다고 생각되어진 교구에도 많은 지원이 있는 것을 보면 인간 고통에 대한 깊은 염려가 고정관념의 틀을 벗어난 것이라고도 해석된다.
하여간 이번 수해를 치루면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교구의 높은 벽이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무엇이 이러한 벽을 뛰어 넘게 만들었을까? 한마디로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의 현실적 현존이 우리를 갈라온 벽을 허물게 한다. 이들에 대한 동정과 연민、이들의 아픔에 대한 동참과 연대, 그리고 나눔으로 표현된 그리스도의 사랑이 모든 벽을 허무는 열쇠이다.
여기서 우리는 귀중한 복음의 말씀을 다시 실감한다.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루가6,20).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우리 모두를 하느님나라로 몰아가는 이들이며 그러한 뜻에서 이들의 현존은 우리를 복음화 시키는 중요한 매개체임을 다시한번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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