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벗에게
사랑하는 벗, 차신부야
요 며칠사이에 바람이 왜 이렇게 차가우니? 이 찬바람에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는 느낌이다. 그러기에 항상 좀 더 따뜻하고 포근한 곳을 찾아 헤매는 것이 우리들의 마음이란다.
이곳에 남아있는 우리가 이럴진대 썰렁한 모습으로 이렇게 누워있는 어는 어떠니? 참으로 걱정이란다.
며칠전 새벽. 그날따라 새벽기온이 올해들어 최고로 낮으리라 예상되던 그날에 우린 아무도 믿지못할 너의 소식을 들었단다. 소식을 듣고도 전혀 믿을수 없었던, 아니 차라리 믿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 남아있는 우리들의 마음이었단다.
차신부야
그러나 오늘 이 시간 믿기지 않는 마음들로 역시 이렇게 너를 마지막 보내는 예식을 거행하고 있단다. 너의 소식을 듣고 걱정스레 모였던 교구신부님들 중 선배신부님이 내게 던진 한 말씀이 그렇게 가슴에 남아있단다『어참 그녀석 착한녀석이었는데...』
그래 넌 너무 착했기에 아니 다른 말로는 표현할수 조차없이 착한 너였기에 우린 오늘 이자리에서 조차도 이 현실이 믿기지 않는단다.
허나 늘 막다르고 갑갑한 순간엔 하느님을 의지하는 우리들이기에 이 믿기지 않는 마음까지도 우리의 주님께 맡겨볼 수 밖에 없구나.
기병아! 한번만이라도 좋다.다시 일어나 보지 않겠니?
세월 속에서 주님을 찾자던 너의 말대로 우린 그런 학교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그렇게 원하고 기다렸던 서품식을 맞게되었지. 성인 호칭기도를 하는 동안 무슨 기도를 했었느냐고 묻는 우리에게 넌 담담히 말해줬지.『죽을 때까지 사제의 옷을 입고 죽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첫기도를 바쳤다고 말이야.
그런 너의 원대로 이뤄진 오늘이지만 그래도 이건 모습으로는 너무 빠르지 않니?
기병아! 차신부야!
너를 위해 이렇게 많은 신부님들, 동창들, 그리고 첫사제의 열정을 온통 쏟아 사랑했던 함양본당 신자분들과 너를 기억하는 많은 분들이 와 있건만 왜 너는 한마디말이 없니? 왜 우리의 목소리를 듣지못하니?
아마도 이런 사고를 당한 것도 다 너의 정성과 사랑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추측컨대 넌 필시 요즘 행하는 사목방문에 조금은 긴장하고 있었을게야. 새신부로서 사목적 책임도 느꼈을게고. 그래서 아마 사목방문이 먼저 끝난 동창신부에게 이것저것 묻고 싶었을게야. 그래서 무리하게 만난 것이 이런 사건을 맞이한게 아니니.
이 정성많고 사랑많은 친구야!
맨 처음 요즘 날씨가 참 춥다고 인사했잖니? 그런데 이젠 우리 마음이 춥지가 않다. 우리 모두의 가슴마다에 새겨져있는 너의 모습이 우리를 따뜻이 만들어준 모양이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친구야!
너는 늘 언제나 우리의 마음속에 오늘의 이 모습으로 남아있을테니 넌 결코 우리를 떠나는게 아니란다. 죽음이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삶이란 바로 이런 모습이겠지.
사랑했던친구야.
잘가거라. 아니 먼저 하느님과 더불어 행복의 삶을 시작하거라. 우리 머잖아 또 만날 것 아니니. 그때까지 행복하거라 다시 만날 그때까지 행복하거라. 다시 만날 그때까지 말이야. 이만 안녕.
교구사제와 동창사제를 대표해서. 마산교구 이창섭 신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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