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7월 4일 프랑스 리용법원은 73세의 늙은 죄수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클라우스 바로비」라고 하는 이 늙은이가 지은 죄는 나치 독일의 점령하에 있을때 반역행위를 했다는 것.
나치군 대위로 리용시 게슈타포대장이었던 이 늙은이는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4천3백42명을 처형하는 등 반민족행위를 하여 「리용시의 도살자」로 악명을 날렸었다. 그러다 연합군이 프랑스에 진입하자 남미 볼리비아로 탈출하여 신분을 숨기고 살아왔는데 프랑스인들이 32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그를 추적끝에 잡아낸 것이다.
프랑스 국민들은 민족을 배신한자를 역사의 심판대에 세우기 위해 이렇듯 무서운 집념을 보였었다.
프랑스 국민의 이런 정신이 있기에 오늘 프랑스의 영광, 프랑스의 자유, 그리고 문화가 있는 것인지 모른다.
우리나라 같으면 73세나 먹은 노인에게 사형까지 내릴 필요가 있겠느냐는 인정론(人情論)에서부터 나치 점령하에 어쩔 수 없는 협력이었다는 정황론(情況論)에 이르기까지 가지각색의 여론으로 그를 용서하였거나 관대한 처분을 했을런지 모른다. 아니. 무엇보다 한국사람은 30년이나 추적할 집념도 없거니와 1년만 지나면 쉽게 잊어버리는 건망증, 그 망국적인 망각병 때문에 흐지부지 되고 말았을 것이다.
「마유미」라는 일본명으로 더 잘알려진 「김현희」가 버젓이 살아있다는게 그 좋은 예이다. 87년 11월 29일 KAL858기를 폭파, 95명의 승객과 20명의 승무원등 1백15명의 귀중한 생명을 죽이고도 그녀는 살아있다. 아마 한국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일 것이다.
그녀가 예쁘게 생겨서 죽이기에는 아깝다고 감상적인 동정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미모가 국민의 피보다 우선할 수가 없다.
그녀는 테러집단의 하수일 뿐이고 그녀가 죽어서 보다 살아있으므로서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민족의 정기를 세우는 것보다 더 큰 국익이 어디있는가.
프랑스 사람들은 30여년을 추적하여 잡은 70대 노인에게 사형을 선고한 까닭은 살려둬서 국익에 도움이 되는 줄 몰랐기때문이 아니다. 살리는 것보다 죽음을 보여주는게 「프랑스정신」을 확립하는 보다 큰 국익이 있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1백15명의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도 김현희가 활보할 수 있음은 잘못된 것이다.
김구 선생을 죽인 안두희가 아직껏 살아있다는 사실도 우리가 얼마나 민족정기에 소홀한가를 웅변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이다.
한 나라의 민족지도자를 그것도 나라가 매우 위험한 지경에 처해있을 때 암살을 하고서도 제 목숨을 누릴 수 있음은 대한민국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민족의 정신」을 잃고마는 것이다.
위대한 지도자를 죽이고도 멀쩡하게 고개를 들고 사는 세상인데 하물며 사람을 죽이거나 부정부패를 하는것쯤, 교통질서 위반하는것쯤, 쓰레기를 버리는것쯤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이승만의 실책 가운데 가장 큰 잘못은 안두희를 살려준 일이다.
그가 외국여자와 결혼한 것도 충분히 이해될수 있다. 십보를 양보하여 3ㆍ15 부정선거를 획책한 것도 노인의 권력욕으로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안두희를 살려준 것은 돌이킬수 없는 실수를 범한것이다.
그는 살아있을뿐 아니라 살아있는 대가로 김구 선생 암살의 진실도 밝히지 않고 있다. 이것은 민족을 두번 배신하는 것이고 역사에 두번 죄를 짓는 것이다.
어떻게하여 이런 역사의 죄인에게 「사형」아닌 「무기징역」이 선고됐고 대전교도소에서 복역 중 6ㆍ25가 나자 석방과 함께 육군소위로 복직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 이후에도 중위 대위 소령 등등 진급을 거듭했고 예편을 해서는 군납업체 사장으로 호강을 누릴 수 있었을까? 그러니 이 나라에 정통성이 뿌리내릴 수 없음은 당연한 이치다.
이것이 이승만의 가장 큰 실책이었다. 두번째 실책은 그보다 앞서 저질러진 친일파를 사랑하고 등용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일제의 앞잡이로 독립투사를 가장 많이 잡아들인 노덕술 같은자를 치안국 수사과장으로 앉히고 도경국장 10명중 8명이나 되는자가 일경(日警) 출신이었다는 사실. 이들은 자신들의 입지를 위해 가장 장애가 되는 독립투사들을 「공산주의자」로 덮어씌워 잡아넣기 일쑤였고 급기야는 자신들의 징벌을 조사하는 「반민특위(反民特委)」를 포위하기도 하였었다.
그러니 민중들이 경찰을 존경할리가 없고 경찰이 시키는 일이면 거부감을 갖게된 것이다. 경찰에 대한 인식이 지금까지도 좋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이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경찰이 존경을 못받는 것은 법이 준수되지 않는 것을 뜻하며 법이 흔들림은 사회치안. 소위 민생치안이 위기에 다달았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또 일제 때 미국과 영국을 지구상에서 몰아내야할 「귀신」이며 「조선인의 징병은 성스러운 것」으로 우리 젊은이들을 전쟁터에 몰아넣던 인사를 UN대표에 보냈는가하면 6ㆍ25가 나자 미국에 원조를 요청하는 투사로 보냈으니 웃기는 일이다. 「귀신」에게 살려달라고 손을 벌리게 된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한ㆍ일 국교정상화를 위한 대표에도 창씨개명을 하며 우리 젊은이들을 일제의 총알받이로 내몰았던 친일파를 임명했으니 그가 무슨 낯으로 일본에 대들어 따질것 따지고 요구할것 요구했겠는가. 정말 나라를 이런 식으로 다스리는게 아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3선 개헌때는 그 권력의 충복이 되고 유신때는 유신만이 민족의 살길이라고 바쁘게 뛰어다닌 사람, 이런 사람이 5공화국 때는 전두환씨를 태양처럼 떠받들더니 6공화국에서는 또 민주인사로 변신을 한 사람들….
이 꼴불견의 카메론들이 사라지지 않는한 우리나라는 언제나 이렇게 소란할 것이다. 이렇게 정통성을 잃고 방황할 것이다. 정말 우리의 기도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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