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엘, 너에게 편지를 한장 써야겠다고 책상 앞에 앉고 보니, 오늘이 마침 대천사 축일, 바로 너의 영명축일이구나. 아니, 사실은 너의 영명축일인 줄 알고 축하도 할겸, 평소에 하고 싶었던 얘기도 좀 할려고 편지를 쓰기로 한 것이란다.
미카엘, 영명일을 축하한다. 네가 알고 있는 것처럼 미카엘 대천사는 악마를 축출하는 임무를 지닌 교회의 보호자요, 전투하는 교회의 모범이다. 그런 점에서 너의 영세명은 참으로 적절하게 잘 지어졌다고 나는 생각한다. 너는 남달리 정의감이 강하고, 교회의 여러가지 일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국민학교 5학년이란 나이를 생각할 때, 그런 모든 일들은 매우 기특하고 갸륵한 일이다. 네가 처음에 복사단에 들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나는 반대했었다.
우선은 집에서 성당까지의 거리가, 새벽에나 저녁에 너 혼자 다니기에는 너무 멀었다. 내가 꼭꼭 데려다 줄 자신이 없었으니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었단다. 그러나 넌 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복사단에 들었고, 지금까지 매우 열심히 복사의 일을 해 왔다. 새벽에, 내가 잠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미사엘 가고 없는 너를 보면 얼마나 믿음직스러운지, 그리고 또 반대했던 일이 얼마나 미안한지 모른단다.
그러나 미카엘, 네가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나는 너에게 할 얘기가 아직 많단다. 너는 내가 무슨 얘기만 하면 잔소리로 몰아붙이지만, 사실은 어른들의 이야기는 선배로서의 충고요, 부모로서의 깨우침이란다. 우리도 너희들만할 때는 어른들의 말씀을 듣기 싫어했고, 어른들이 만족할만한 모범생이 못 되였던 것도 사실이란다. 그런데 학교를 졸업하고 나이를 먹어 어른으로서 성장해 가는 동안에 어른들의 그 말씀들은 단순한 잔소리가 아니고, 우리가 그들의 잘못을 다시 반복하지 않게 하기 위한 중요한 교육이란 것을 깨달았단다. 내가 너를 가르칠려고 할 때마다 너는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워즈워스의 시를 방패로 내세우기도 잘하더라만, 인생을 먼저 살아본 사람의 값진 충고임을 이해해야 할 거야. 자, 그럼 내가 네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를 몇 가지만 할께. 네가 그렇게도 지긋지긋하게 생각하는 공부 얘기만 빼놓고 말야.
먼저 책을 좀 많이 읽으라는 말을 하고 싶다. 또 책 얘기냐고 지레 겁부터 먹지말아라.
너희들이 진절머리를 내는 학교공부도 사실은 중요한 것이지만, 여기서는 그 얘기가 아니다. 성인전도 읽고、교리책도 읽고, 동화책도 시집도 소설책도 읽어라. 너희들이 읽어서 재미있고 유익한 책은 얼마든지 있다. 마침 춥지도 덥지도 않은 가을 아니냐. 책을 읽으면 재미도 있지만, 그 가운데는 놀라운 지식과 깊은 감동이 있어서 너희를 보다 모범적이고 슬기로운 학생으로 성장시켜 줄 것이다. 하현 달빛이 뜨락을 쓸고, 스산한 바람곁에 풀벌레 우는 가을밤에 읽은 몇권의 책은 한 평생 너의 영혼을 아름답게 지켜줄 것이다.
다음에는 나의 입장만 내세우고 남의 마음은 이해하지 않으려는 자세를 수정해야한다. 네가 누나들과 다투는 일도 다 거기에서 연유되는 것이다.
‘내가 먼저 남의 벗이 돼라’는 말이 바로 그 말이다. 그리고 특히 천주교 신자로서의 미카엘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네가 기도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도를 하고서도 하느님의 뜻을 살피고 그 뜻에 따라 사는 의지와 노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들고 싶다.
미카엘, 오랫만의 편지에서 네게 주문이 너무 많았구나. 우리는 자랑스러운 천주교 신자다. 모든 일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고、그 뜻이 어디 있는가를 살피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모범적인 신자, 모범적인 학생이 되지 않겠느냐.
몸 건강하고 착한 미카엘이기를 빌면서, 안녕.
이번호부터 매달 주일학생들에게 보내는 글 한편씩을 싣습니다. 글은 대구 덕원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중인 윤장근(가브리엘)선생님께서 맡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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