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복사 아이들이 퍽이나 귀엽다. 자기들이 제대 위에 올라와 복사를 한다는 것은 감히 생각치도 못했다가 새로 마련한 예쁜 복사복에 모자까지 써 자신들의 예쁜 모습을 서로 보면서 흐뭇해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도 기쁘다. 차례로 복사를 하지만 여자 복사가 없을 땐 서운한 마음마저 든다. 어떤 아이들은 손에 봉숭아 물을 예쁘게 들였다. 어린시절 앞마당에 즐비한 봉숭아꽃을 따다가 손가락에 물을 들였던 추억을 되새기게 해 준다.
어느 날 저녁 한 자매님이 봉숭아 물을 들여 주겠다고 찾아왔다. 미사 때 복사를 했던 예쁜 딸아이와 함께, 엄마도 딸아이도 손가락 모두 예쁜 봉숭아 물이 들여 있다. 손가락을 내어 맡겼다. 반창고로 살을 가린 후 손톱에 봉숭아를 놓고 붕대로 감아주었다. 내일 아침까지 풀지 말란다. 할 일도 많은데 손을 묶어 버리니 불편하다. 잠잘 때도 어쩐지 갑갑해서 풀어버리고 싶다. 하지만 내일 당장 확인할 자매님과 어린 복사의 정성을 생각하니 참을 수 밖에 없다.
손가락이 빨갛게 물들어 있다. 어린 시절의 낭만이 되살아난다. 그때는 손가락이 온통 빨간색이었는데 손톱만 예쁘게 붉다. 내가 보기에도 부끄럽다. 이 손을 가지고 어떻게 미사를 지낼까 걱정스럽다. 그러나 자매님의 정성을 간직해 준다는 것、복사애들의 흐뭇한 미소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아니나 다를까. 보는 사람마다 이야기거리다. 누가 봉숭아 물을 들여 주었느냐? 그 주인공을 찾는데 신경이 날카롭다. 여자 손 같다느니 예쁘게 물이 들었다느니 자매님들은 퍽이나 관심이 많다. 여자 복사애들은 자기들처럼 신부님도 봉숭아 물을 들였다고 야단이다. 형제님들은 이게 무슨 짓이냐 없애버리라고 압력을 넣는다. 신부님들도 기가 막힌 모양이다. 성체를 분배할 때 특히 신경이 쓰인다. 손가락을 감출수도 없고 손톱을 제거하기 전에는 없애기도 불가능하다.
손톱이 자라나면서 차츰 봉숭아 물이 든 손톱이 사라져 간다. 사랑이 담긴 정성이 사라져 가는 것만 같다. 어린시절 물씬 풍기던 고향의 모습이 흐미해져간다. 그리도 아름다웠던 나의 꿈이 퇴색되어 가는 내 모습을 반영해 주는 것이 아닐까?
올 가을에도 누군가 나타나서 봉숭아 물을 들여줄 사람이 있을까. 어린 시절의 천진난만함을 또 다시 되새겨볼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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