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은 많은 국민에게 충격과 분노를 일으키게 했다.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활동은 과거부터 공공연히 행해져온 「알려진 비밀」이었으나 이번에 물증이 확보됨으로써 그 실체가 드러난 것 뿐이다.
특히 이번사건에 우리 가톨릭교회로서는 김수환 추기경과 윤공희 대주교, 정진석, 박정일 주교 등 고위성직자들을 비롯 65명의 성직자들이 사찰대상 명단에 포함돼있는데 대해 큰 실망과 함께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수 없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김 추기경은 우리교회 내에서 뿐만아니라 한국에서 가장 훌륭한 정신적 지도자의 한사람으로 국민을 사이에 널리 인식되고 있다. 다른 성직자들도 마찬가지다. 인류 구원을 위해 활동하는 교회의 지도자를 「순화대상A급」,「순화대상 B급」이란 딱지를 국가기관이 붙혀 놓았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참으로 실망과 유감을 지울 수 없다.
그것은 가톨릭교회의 성직자들을 이해하는 근본자세 자체가 잘못돼 있다는 점이다. 이번 사찰대상에 포함된 이들 성직자들을 살펴보면 과거에 얼마동안 혹은 지금까지도 對정부 비판활동을 해오고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정부나 군의 입장에서 보면 눈의 가시와 같은 존재들일지 모르나 우리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고언(苦言)과 직언(直言)을 해오고 있는 분들이 아닌가? 성직자들이 무슨 당리당략이나 사리사욕을 위해 발언하고 행동해온 사람들인가?
또한 1천3백여명의 다른 사찰자 가운데 과연 좌경 불순사상을 가진 요보호인물이 얼마나 포함돼 있는지 알 수 없으나 그들 대다수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활동해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요보호인물」로 분류해 사찰해왔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진정한 민주화. 참다운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닌가하는 오해를 떨쳐버릴 수 없다.
이번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정부는 국방부장관과 보안사령관을 전격적으로 교체하긴 했으나 그런 미봉으로는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먼저 국정최고책임자의 대국민사과와 앞으로 또다시 그 같은 우(愚)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보안사의 해체나 기능축소 등을 통한 군기관의 민간인 사찰금지를 제도화하려는 쪽보다는 기밀누설과 보고지연 등의 책임을 물어 사태를 수습하려는 것은 국민의 여망에 크게 빗나가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기회에 한가지 덧붙여두고 싶은 것은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이 재연되지 말아야한다는 것이다. 즉 이번의 보안사일만 해도 사건이 터지고만 다음에야 『언젠가 한번은 곪아 터져야할 일이었다』는 얘기가 또 다른 부서에서 되풀이 되지않아야할 것이다. 머리는 민주화하려는데 손발은 구습에 젖어있어서야 되겠는가.
특히 한소수교에 이어 일본과 북한이 접근하고. 독일이 통일되는 등 국제정세가 날이갈수록 급변하고 있으며 경제의 어려움 등 국내문제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고있는 이 마당에 이번 사찰로 정치권은 더욱 미궁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여권은 말할 것도 없고, 야권 역시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를 새롭게 펼쳐나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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