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변호사인지라 법정에 출입한다. 한평생 법을 공부하고 법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만나오고 있다.
사건 당사자는 물론이고 그 사람의 주변인척들까지 나오는 법종이 날이 갈수록 변모하는 것을 근심 안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억울하고 통탄할 문제를 눈 앞에 두고 그 사실을 진실하게 규명하는 것은 성스러운 작업이다. 우리 법조인들이 기도하는 심정으로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의무이다. 이렇게 한평생 살아오면서 날로 유감스러운 것은 일부 법정 출입자들이 한심스럽기 짝이없는 것이다.
질서와 엄숙은 어디로 갔는가?
법정출입문에서부터 쏟아져 들어 와서는 야단법석을 떨고 심지어 같이 온 일행의 자리까지 잡아놓고 소리를 내지른다. 현대사회의 각박함과 경쟁 속에서 부대낀 습관이 정숙해야 할 법정에까지 침투해 있는 것이다.
그 법정에 나와 참관한다는 것은 어느 누가 잘했고, 어느 누가 망하는 꼴을 보려고 나오는게 아니다. 하나의 불행한 일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작은 사안(事案)이 어디에서부터 출발되어 그 결과를 낳게 되었는지를 규명하자는 것이지 피고와 원고만의 싸움은 아니다.
증거자와 대리자까지도 있으며 그 사건에 관심을 갖고 나온 이들이 큰 의미로는 모두 그 사건의 동참자일 수도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변호사로서는 법의 이론에 기반을 두고 이해와 법의 묘(妙)를 대변하는 것이다. 그 참관인들이 다 변호사일 수 없듯이 그 사건에 자그마한 책임감이라도 있다면. 적어도 연민의 정이라도 있다면 그 자리가 먼저 엄숙해야 하지 않겠는가?
재판의 성격이 단순히 「벌」주는 것이라면 「참관인」이라는 구성원은 필요치 않을 지도 모른다.
그 사건에 이래저래 관심을 갖는 모든 사람들이 그 문제점을 지켜보면서 생각해 봐야 할 자세는 겸손과 반성이어야 한다. 그러한 일이 다시는 없도록 참회하는 자세가 사건 당사자 모두에게 요구되는가 싶다. 우리 인간의 선이나 악은 혼자만으로 성립되지 않는다는 자각이 이제는 있어야 겠다.
작은 인정과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고. 또 서로를 격려하는 사랑과 희망으로 모여 사는 곳이 바로 사회가 아니겠는가? 우리 국민성이 성급하고 자기집안만이 이기적인 성격도 있으나, 우리 인간끼리 해결 못해서 법의 판단을 받고자 법정에 나와서까지 야단법석을 떨고 자숙을 못해서는 참으로 곤란하다.
재판의 결과때문에 근심하는 이들은 그 사건의 문제점을 참을성있게 듣고 생각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사도 바울로는『고통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낳고, 그러한 끈기는 희망을 낳는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로마5장 참조)라고 했다.
한 개인의 삶이 고통을 당할 때 인내와 끈기로 희망을 얻어 내듯이 가지각색의 죄악과 고통이 범람하는 이 시련의 시대를 우리국민 각자가 인내를 갖고 참아내 질서를 갖게하자고 말하고 싶다.
어린생명들이 무참하게 죽고 전화 좀 길게 했다고 죽고、순결한 처녀들이 짓밟히고, 하다못해 고저녁한 시간 산보하다가도 죽는 사회는 시련의 사회가 아닌가? 어떤 상황이든 결과만이 중요하고 돈만이 제일이고 서로 헐뜯고 겉치레만 급급한 세상, 자신만의 쾌락과 즐거움만이 인생의 전부라고 이심전심 동조한 것은 우리 모두가 아닌가? 참고 인내하는 자기 극복과 꾸준한 노력 끝에 얻는 댓가만이 값진 것이라고 말한 사람은 몇이나 되는가?
온유함과 평화로운 마음으로 살아야한다고 준엄하게 교육하고 기도한 부모는 몇사람이나 되는가 생각해보자.
어린이들에게 상대방을 때려서라도 이겨야한다고 교육하는 한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다.
언성만 높이지말고 손과 발을 사용하지 말고 이치를 따져 이야기해야한다고 가르쳐야 한다. 지금의 세대가 다음세대에 전해주어야 할 전통은 바로 이것이라고 믿는다.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신뢰하는 것이다.
다시 로마서 8장에는 또 「마음의 법과 육체의법」에 대해 말씀하는 중에 『내가 선을 행하려 할 때에는 언제나 바로 곁에 악이 도사리고있다』고 한다. 마음의 법이란 즉 양심이며 하느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신 자연법이다.
그런데도 이 「양심」마저도 늘 위협받는 나약함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우리는 내면을 통해 깨닫게 된다.
법창(法窓)에 비쳐진 오늘날의 세태가 근심되었으나.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세상 곳곳에서 진실되게 살고있고, 죄악을 일삼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수의 착한 사람들이 기도하는 한 평화를 누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세상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격언을 깨닫는 것 처럼, 갓난아이 때부터 도덕심과 질서를 교육하는 길이 있을 것이고, 신자의 방법으로는 우리 서로 기도하는 길뿐이라고 감히 믿는다. 그렇다면 누구를 위해 기도하는가 생각해 보자, 비그리스도교인들은 인간만의 평화와 사랑을 위해 일하겠으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전능하신 천주성자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회와 이웃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야 하리라.
지금까지 수고해주신 조철현 신부ㆍ성찬경ㆍ한홍순ㆍ변평섭씨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호부터는 이동균(변호사) 김두석(KBS부산본부 보도국장) 박노열(교수ㆍ대구계명대) 이완교(교수ㆍ서울예술전문대)씨께서 맡아 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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