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되었니?』
대입 합격자 발표가 있었던 그 다음 주일미사 후 본당 수녀님의 첫 질문이었다.
『떨어졌어요』
『그것봐. 신학교에 갈 사람이 자꾸만 일반대학에 원서를 넣으니 안 떨어질 수 있겠어?』
두번째의 낙방으로 온통 절망감과 허탈감에 빠져있던 나에겐 다소 잔인한 말로 들렸지만 그냥 수녀님의 억측(億測)을 계속 듣고만 있었다. 「피정 중에 계속해서 내 얼굴이 떠올랐었으며 나에게는 훌륭한 신부님이 될 자질이 감춰져 있다」는 뭐 대체로 그런 얘기들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과연 엄청난 어거지였다. 물론 성직자가 되어볼려고 생각해본 적은 있으나 그것은 어렸을때의 일이다. 지금와서 어린시절의 철없던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장래를 결정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나에게는 성직자가 될 수 없는 충분하고도 합법적인 이유가 있었다. 일찍 혼자되셔서 우리 4남매 뒷바라지에 몸과 마음 모두 아끼지 않으셨던 어머님을 장남으로서 모시고 살아야 할 의무가 있었으며 또 좋아하는 여자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는 내가 그런 성직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희생과 절제가 무엇인지도 모르며 어떻게 보면 방탕하다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생활해온 나에게 성직이라는 것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뒤로도 수녀님의 집요한 설득은 계속 되었고 마침내는 수도원에서의 저녁식사 초대에 응하고 말았다.
난생 처음 가보는 수도원은 생소하다 못해 이국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침 넘기는 소리조차 조심할 정도로 사방에 감도는 침묵, 깔끔하고 세련되어 보이면서도 정중함과 알맞은 무게를 가진듯 보이는 수도복, 그리고 어둡고 탁해 보이지만 그 안에 자리하고 있는 따뜻함과 질서, 이 모든 것들이 신비롭게만 보였으며 마침내 이 신비로움은 나의 본능적인 호기심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어리둥절한 가운데 저녁식사를 끝낸 후 지원자 담당 수사님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참지 못하는 나는 수도 생활의 이모저모에 대해 질문했으며 수사님은 성심껏 대답해 주셨다. 그러나 이야기가 끝날 무렵 지원자 담당 수사님으로부터 너무나 황당한 말을 듣게 되었다.
『언제쯤 입회하시겠어요?』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입회라니, 누가입회를 한다는 말인가. 단지 수녀님의 부탁에 못이겨 식사초대에 응한것 뿐인데, 그러나 나의 대답은 더욱 엉뚱했다.
『언제쯤 입회하면 좋겠습니까?』
『빠를수록 좋지요』
수사님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대답을 들은 나는 아무 주저함이 없이 흡사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바로 그 자리에서 입회하기를 결정했으며 입회날짜는 일주일후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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