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에 루시아 부부가 이 시골에까지 찾아왔다. 하도 오래 전의 일이라 언뜻 기억이 나지 않았으나 방긋 미소 짓는 모습에서 옛 추억이 되살아났다.
십여년이 훨씬 넘는 초봄 어느 날 저녁 부활대축일을 준비하느라 저녁마다 성가연습을 하던 중에 아가씨 하나가 갑자기 쓰러졌다. 병원응급실에 옮겨놓고 입원수속을 밟으며 보호자가 되었다. 숭전대 앞에서 어머니와 둘이서 분식집을 하고 있으며 영양실조로 큰 병에 걸려 수술을 해야하는 형편인 것도 그때서야 알았다. 입원을 시켜놓고 가족을 찾아 헤매던 일. 서강대 대학원엘 다니면서 학교가 끝나면 병원에 가서 간호해 주던 기억들이 어슴프레하게 떠오른다. 주머니를 털어 루시아를 퇴원시키고 까마득하게 잊었던 어느 날, 종로4가에서 신문을 팔고 있는 루시아를 보았다.
돈주머니를 앞치마로 하고 초췌한 모습으로 삶의 용트림을 하고 있는 루시아, 반가움에 어쩔줄을 모르며 눈가에 맺힌 눈물방울을 보며 총총히 사라졌던 나였다. 학위논문을 쓴답시고 어느 수도원에 처박혀 있으면서 주일이면 종로에서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고 식사를 하러 가던 중이라 어떻게 사는지 물어볼 여가도 없었다.
7~8년의 세월이 흘렀을까 시골성당에 부임하여 모처럼 꾸르실료에 보낸 자매님들을 위해 끌라우슬라에 참여하고 그분들을 모시고 성당에 도착하니 시골에선 보기드문 빠알간 옷을 입은 낯익은 얼굴이 나를 반긴다. 남편이 옆에서 잘 기억이 나시지 않으신 모양이라지만 그 옛날의 루시아 모습이 생각난다. 루시아는 자기 본명을 부르는 나를 눈물어린 모습으로 반긴다. 남편이 된 사람은 그 당시 성가대 단장이라는데 내 기억엔 없다.
남편에게 루시아의 건강을 물으니 아기도 넷이나 잘 낳고 아프다고 하지 않는다니 천만다행이란다. 남편은 자기가 생명의 은인이라지만 루시아는 신부님이 생명의 은인이라 이렇게 찾아왔단다. 어머님이 지금도 신부님을 얼마나 보고 싶어 하시는지 모른단다.
공소의 미사 때문에 삼십여분 만나고 떠나는 루시아부부를 전송하면서 짜릿한 감회를 맛보았다.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한 사람들은 이렇게 다시 만나나 보다. 『나 신부님을 통해 치유의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는 루시아의 미사지향을 보며 부족한 정성이지만 그 가정을 위해 감사의 제사를 바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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