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적은 얘기지만 나는 이른바 「유행가」라는 것을 가끔씩 듣는 편이다. 한국인의 놀이판에서 필수품으로 여기는 「십팔번」이라는 것도 두어개 갖고 있어 그럭저럭 창피는 모면한다. 고상한 사람들은 유행가란 한낱 감상주의의 산물이요, 그저 잠시 반짝하다가 사라지는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눈쌀을 찌푸다. 하기야 대부분의 노래가 이별과 눈물의 잡탕인 값싼 사랑 타령 뿐이요 인기를 끌다가도 어느 사이에 잊혀져버리는 것이 유행가의 속성이니 굳이 시비할 까닭이없다.
그러나 나는 유행가야말로 그 시대의 세태나 풍조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흘러간 옛가요를 들을 때면 당시의 풍속화를 들여다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때로는 한곡의 유행가가, 작가야 의도했든 안했든, 시대상황을 찌르는 촌철(寸鐵)의 역할을 담당하는 데에 기특하다는 생각을 갖기도 한다.
예컨대 「아침이슬」「고래사냥」「늙은 병사의 노래」 등이 그렇다. 그리고 그런 노래일수록 애매모호한 이유로「금지곡」이라는 사형선고를 받지만 도리어 민중 사이에서 긴 생명을 누리는 데에 감탄하기도 한다.
십수 년전에 유행했던 「거짓말이야」라는 노래가 80년대에 들어선 정권하에서 금지곡이 된 것도 내게는 꽤나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심의위원들 딴에는 이 노래가 불신풍조를 조장하는 원흉으로 여겨졌는지 모르지만 나는 「도둑이 제 발저리는 꼴」이라고 일찌감치 단정한 바 있다. 『광주사태는 폭동이다』라는 식의 거짓말로 권력을 거머쥘 수 있다는 신화를 창조했던 정권이니『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식의 거짓말을 권력유지의 수단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권력에게는 이 노래가 흘러나올 때마다 마치 자기네들을 비아냥거리는 소리로 들렸을 터이다.
최근까지 유행했던 「빙글빙글」이라는 노래가 있다. 나는 언제부턴가, 아마도 보도지침이라는 괴물이 사실상의 편집국장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을 때부터라고 짐작되지만, 이 노래를 들을때면 곧바로 이 땅의 언론을 떠올리는 버릇을 갖게 되었다. 그 가사가운데 『그저 바라만 보고 있지』라는 구절이 언론 주제가로 안성마춤이라는 생각에서다. 이 얄궂는 생각은 권력에 의해 저질러지는 잘못과 그 양탄자 밑에 감추어진 거짓의 쓰레기를 들추어내야 할 언론이 그저 초점 잃은 눈만 껌벅이고 있다는 판단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런 속셈을 밝히면 언론 쪽에서 이 노래를 금지곡으로 하자는 주장이 나올법도 하다.
그러나 유행가 하나를 금지곡으로 묶는다고 해서 거짓의 실체와 굴종의 실상이 감추어질수 있으리라는 발상 자체가 치졸한 것일 수밖에 없다.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면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일 뿐이다. 사람의 입을 막으면 대나무 숲이라도 소리친다. 진실은 결코 지하에 묻혀지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진실이 백일하에 드러나기까지 세상에는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거짓말이야」의 권력과 「그저 바라만보고 있지」의 언론이 국민에게 끼친 씻을수 없는 해악인 것이다.
권력은 자신이 저지른 불의를 은폐하기 위하여 거짓을 일삼고 진실조차 유언비어로 몰아붙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미 권력의 먹이와 채찍으로 길들여진 언론은 앵무새처럼 왜곡을 확대 재생산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니 국민들은 어디서 어디까지가 진실이며 어디서 어디가지가 유언비언인지를 가름할수 없게 되고 자연히 세상은 불신의 거대한 소용들이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실제로 나는 80년 5월의 광주에서 권력이 주장하고 언론이 나팔을 불던 유언비어라는 것의 실체가 과연 무엇이었던가를 온몸으로 체험했다. 그들이 말하는 진실이란 곧 거짓을 의미했고, 그들이 말하는 유언비어란 바로 내 눈 앞에서 저질러졌던 사실임을 확인할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비단 나와 광주 시민들에게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지난 8년동안 대부분의 국민들 역시 대형사건이 터지면 으례 뒤따라 다니던 루머들이 유언비어가 아니라 사실인 것으로 밝혀질 때마다 충격을 받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정작 악성 유언비어가 나돌아도 국민은 권력의 해명을 도무지 믿으려하지 않는다.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지 않는다는 말이 실감날 지경이다. 그 단적인 예를 들자면 바로「KAL기 폭파사건」에 대한 대학가의「대자보」를 들 수 있다.
숱한 인명을 빼앗아간 천인공노할 사건을 두고서 조차 북쪽이 저지른 만행이라는 정부의 주장에 맞서 정권유지의 권모술수라는 루머가 떠돈다면 심각한 일이 아닐수 없다. 어찌해서 이런 끔찍한 논쟁이 있을수 있느냐고 말할 필요가 없다. 권력이 도덕성을 인정받고 언론이 신뢰를 얻었다면 애당초 「대자보」라는것 자체가 등장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이땅의 비극은 권력과 언론 그 어느 쪽도 국민을 마음으로부터 승복시킬 설득력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는데 있다. 그러나 절망은 아직 이르다. 국민의 의식이 깨어나고 민주화의 길도 비록 험난한 여정이지만 결코 막혀있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새로운 언론의 태동 소식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발견할 수 있는 까닭이다. 이는 기존의 언론에게도 커다란 자극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형님인 태양과 누님인 달』을 노래했지만 나의 유행가 타령은 『주인인 권력과 시녀인 언론』이 고작이다. 이것이 성인과 속인의 차이라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따지고 보면 「프란치스코」성인도 탐욕과 위선의 세계에선 부질 없는 반항아로 핍박을 받았고 거짓과 굴종의 시대에선 덧없는 저항아로 박해를 받았다. 그의 노래가 지금이야말로 그지없이 성스러운 것으로 들리지만 그 시대에는 반체제 주제가로 여겨졌을른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오늘의 속된 노래가 내일의 성가로 불리워질른지 누가 아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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