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딸애가 대학 입학시험을 치러간다. 신경이 둔감한편인 애비도 마냥 느슨할 수가 없었다. 고3 병을 그 부모도 함께 앓는다는데, 애를 너무 믿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삼단갈던 머리가 절반도 더 빠져가며 계속되는초긴장 상태속에 살아가는 양이 안스러워 짐짓 외면했나보다.
시간에 늦지않게 서두르고서『아빠, 다녀오겠습니다』한다. 순간 무엇인가 힘찬 격려를 해주어야겠다고 생각되었다.『얘야?…』불러서 가까이 오게하여 꿇게한 후 옆에서있는 제 어미의 손을 끌어잡고, 애 머리위에 포개어 안수하고서 간절한 소망을 담아『인간 역사안에 활동하시는 주여! 당신이 원하신다면 우리의 혼인성사 강복에 의지하여 비오니, 우리를 통해 이땅에 태어나 이 험난한 입시지옥을 가려는 어린 것을 보호하여 제 길에 설수있게 도와주소서ㅡ』하고 간원하였다. 후일 음대 관현악과 합격이란 낭보를 듣고『데오 그라씨아스! (주님께 감사)』란 말씀 밖에 드릴 수가 없었다.
강복은 성조 아브라함에 이어「하느님 백성」안에 중대하고도 성스러운 행위로 이어진다(창세기). 구세사(救世史)전반에 걸쳐 강복은 선택의 표징과 축복자체였다. 어린시절부터「에사우라 야곱성조 이야기」를 통해 강복이 자신과 후손의 흥망성쇠를 가늠하는 중차대한 일임을 들으면서 자란다. 그러기에 교황성하의 강복을 받기 위해 모여든 열렬한 군중 속에서 우리는 겸허한 감격을 맛보았고, 주교님의 강복, 새사제의 강복에 옷깃을 여민다. 미사의 파견부분에서도 사제의 강복으로 신전지회(神戰之會)용사로서의 용기를고무시킨다. 이렇게 전례상 강복행위가 정착되었다.
그런데 평신도 자신들이 갖고 있는 무한한 성성(聖性)은 미개발 상태에 있어 신앙의 생활화 및 토착화의 미흠이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그리스도 신비체」의 대부분인 평신도 문제에 착안하여「평신도 사제직, 왕직, 예언직」을 선언한 공의회 정신이 구체적으로 표현, 정착되기 위해 우선 평신도의 자긍심을 찾을 시점에 와있다. 그렇다고 성직자체의 고상함을 경감시키자는 것은 아니다. 「혼인성사는 누가 줍니까?」서슴없이「신부님께서요」혼인교리를 지도할 때 늘 있는 일반신자들의 대답이다. 혼인성사의 주체는 당사자들이므로 당연히 부부가 서로에게 주는 성사적 특성을 지녔는데도 말이다. 물론「신부님께서 주신다」는 대답에는 일반적인 제성사 집전이 사제에게 주어져 있어 전례행위의 외형만을 보면 틀린 대답이라 할 수 없지만, 하느님을 사실의 증거자로 세워 가족과 친지들 앞에서 일생 서로 사랑하고 신의를 지키기로 엄숙히 맹세하고 이를 지켜갈 때 서로가 서로에게 베푸는 성사의 주체가 바로 자신임을 덜 인식하고 있는것 같다.「하느님의 백성」중 대부분을 점하는 평신도들이, 일반 사회 혼인과 달리「혼인성사」로 그 품위를 높여주신 은총을 깊이 인식하고, 혼인「성사」의 놀라운 힘을 재발견하면, 삼손에게 주신 능력이 자신들에게도 있음을 깨닫고 놀랄 것이다.
혼인「성사」의 놀라운 힘을 발견하지 못하고 성직자들에게 수동적인 자세로만 의지한다면 교회가 힘약한 집단이 됨은 자명하다. 신품의 방사(放射)나 강복이 성스러운 것이라면 혼인성사로 인한 안수와 강복 또
한 성스럽고 힘이 있는 것이다. 기실 혼인성사의 강복없이 신품성사의 강복이 있을수 없지 않은가! 자녀들의 입시나 위험 중에 생미사를 청하고, 눈물로 얼룩진 9일 기도도 좋다. 그러나 자신들이 갖고 있는 혼인「성사」의 신익(神益)에 의지한 기도와 안수와 강복이 토착화되어질 때, 생동하는 공동체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집단적인 것이고 가정은 알찬 열매를 가장 확실하게 맺게하는「신앙의 교실」이기 때문이다. 자녀들이 절망적으로 앓고 있다든지, 입시와 같은 중대한 일이 생긴다든지, 멀리 곁을 떠날 일이 생겼을 때, 십자고상 앞에 촛불(세례 때받은 초면 더욱 좋겠다)을 켜고 성수를 뿌린 다음 부부함께 안수하고서 온 가족이 함께 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강복을 준다면「유리겔라의 초능력」에 비기겠는가?
이왕 썼으니, 이 기회에 한가지 제언을 한다. 요사이 흔해빠진 관면혼인이 아닌 신자끼리 혼인성사 끝에, 새 사제의 대강복과 유사한 새 부부가 베푸는 강복식이라도 있었으면 한다. 기혼자에게는 혼인계약 갱신의 의미가 될것이고 미혼자에는 혼인성사의 숭고함을 배울 수 있겠기에 말이다.
물론「완결된 혼인」이 아니라는 신학적 이론이 있겠지만 큰 장애는 아닐 것이다. 더우기 교회의 골치꺼리인 관면혼인의 범람을 막고 완전한 신자가정이 더 많아지도록 유도하는 교정(敎政)의 수단이 될 수도 있을것 같기에 말이다.
인간역사 안에서 구원사업의 완성을 위해 활동하시는 성령께서는 백합의 고매함(성직)만을 자료로 쓰시지 않으시고, 석죽화(石竹花=패랭이꽃 )의 강인함(혼인)도 충분한 자료로 쓰심을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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