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돌아오는 차안에서 내가 얼마나 엄청난 일을 저질렀는가를 알게 됐다. 그렇게 쉽게 결정하다니…내가 수도원에 들어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실 어머님께는 뭐라고 말씀드릴 것이며 또 여자친구에게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참으로 암담했다. 지금도 내가 왜 그렇게 쉽게 결정하게 되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예상했던대로 나의 결심을 들으신 어머님께서는 너무도 놀라셨다. 그도 그럴것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고 또 어머님께서 나에게 거는 기대가 남달리 컸던 까닭이다. 밤새 논쟁이 거듭되었고 새벽이 거의 가까울 무렵 힘들게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다. 이제는 여자 친구가 문제였다. 울며불며 안된다고 했지만 며칠간의 실랑이 끝에 간신히 설득할 수 있었다. 나의 입회는 그렇게 힘들게. 그러나 빠르게 진행되어 갔다. 이부자리며 옷가지들을 준비하시면서 시종 눈시울을 붉히시던 어머님께서는 수도원에 입회하는 날 마침내 눈물을 보이셨다. 다른 지원자들의 어머님들은 모두 밝은 얼굴이었지만 나는 눈물 흘리는 어머님이 더 좋았다. 어머님께서 흘리시는 눈물의 의미를 잘 알고 있던 나에게 그것은 더없이 소중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의 수도생활은 시작됐다. 다른 사람들의 축복보다는 반대 속에서 시작된 수도생활이었고, 또 얼렁뚱땅, 엉겁결에 시작한 수도생활이었기에 남보다 더욱 열심히 살려고 했지만 몸에 배어버린 불규칙하고도 충동적인 생활습관 때문에 난관에 부딪힌 때도 많이 있었다.
약 한달 반쯤 수도원에서 살다가 학기가 시작되자 나의 생활은 신학교 기숙사로 옮겨지게 되었다. 수도원보다는 다소 익명화되어지고 사무적인 것 같은 신학교 생활이었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물론 도시의 자유분방한 생활이 그리워 뛰쳐나올 생각도 안해본 것은 아니나 그런 생각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이렇게 나름대로 힘들다면 힘들게, 또 보람되다면 보람되게 신학교에서의 한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을 맞아 수도원으로 돌아오자 수도원에서는 일주일간의 휴가를 주었다. 그사이 다른 곳으로 이사가면 어떻게 하나 하고 걱정했었는데 나의 염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집은 제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었다. 집안 식구들도 모두 잘 있었고 특히 건강한 어머님의 모습은 다른 무엇보다도 나를 기쁘게 했다. 밤늦도록 어머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수도원에 들어간 후 처음 한달 동안은 거의 아무일도 못하셨다고 한다. 아무곳에서고 내가 불쑥 튀어나와 얘기할 것만 같았고 그런 기대가 사정없이 무너질땐 또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으셨다고 한다. 이렇게 어머님은 나에 대한 염려와 사랑으로 매일매일을 살얼음 밟듯이 지내셨던 것이다. 사실 나도 매일 집안 식구들을 위해 기도했었다. 국민학교 4학년때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부터 줄곧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 있었다면 바로 집안 식구들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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