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라만상이 고요로 젖어드는 어느날 오후이다. 금방이라도 몇줄기 빗물이 소리도 없이 내릴 것 같다. 그래서인지 몸도 마음도 나른해진다. 제일로 맘에 드는 시간이라고나 할까. 명상에 젖어 꿈속으로 이어지는 고요한 내 시간이다. 그런데 웬걸 초인종 소리가 요란하다. 이런 시간에 까지? 투덜거리며 맞아 본 얼굴은 너무도 가슴 아프게 와 닿는 낯선 노부부의 표정이다. 짜증주릴 새도 없이 맞아 들였다. 어째서 오셨습니까? 무겁게 내 놓는한마디 『신부님 …』그러고 나서 다음과 같은 사연이 이어진다.
시골 조그만 농장에서 사신단다. 그런데 몇 달전 장사하다 망하게 된 아들 내외의 기막힌 세상 하직이다. 괴로움에 짓눌린 어진 며느리가 먼저 제초제 농약 음독자살이다. 그리고 슬픔도 체 가시기전에 아들도 같은 짓을 했다. 그는 숨지면서 부모를 원망했다. 병원에 실려간 아들은 그 무서운 고통중에서도 부릅 뜬 눈, 담지 못할 욕으로 부모를 한 맺히게 하면서 숨져간 것이다. 그후 이노부부는 병이 난 것이다. 심장이 뛰고, 머리 아프고, 혈압이 오르고… 세상이 모두 캄캄만 하다. 병원 다니기를 두달이 넘었다. 아무런 차도도 없다. 그래서 찾아온 것이다. 듣는 나로서도 덜컥 겁이 났다. 숫제 어떻게 위로해 드릴것인가…? 긴장과 두려움이 내 심장을 묶어놓고 있었다. 아마도 이럴 때가 제일로 당황하게 되는가보다. 참으로 묘하게도 우리 주님께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 걱정하지 말라 하시는 당부의 말씀이 이런 상황을 두고하신 말씀이심을 확신할 수가 있었다. 용기를 내서 잘오셨습니다. 이런 병은 병원에 가서 나을 병이 아닙니다. 기도 힘밖에는 없습니다. 한참 설명이 오간후 위한 기도가 함께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산자와 죽은 자의 화해기도이다. 예수님이 중재자가 되시고 그분이 이승의 부모와 저승의 아들 내외 손을 꼭잡으신 모습에서의 화해하라는 기도이다. 미움도 원망도 없는 실로 사랑의 기도요 용서의 기도였다. 상당한 시간 속에 이제까지 있었던 모든 속사정을 털어놓는 기도였다. 노부부의 눈에선 어느새 봇물이 터진다. 내가 본 그 눈물은 참으로 고왔고 아름다왔다. 끝나고 보여주신 두내외는 한결 표정이 밝다. 고통에서 벗어난 것이다. 한번으로 족했고 잘지낸다는 소리를 들었다.
구원의 사순절에 문득 잊지못할 사연이 생각나서 되새겨 보았다. 사랑과 화해의 의 기도가 더욱 필요한 사순절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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