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책장에 소중히 접어둔 한장의 주보를 꺼내 읽으며 새로운 감회에 젖어들곤한다. 2년전 쿠웨이트를 첫 기착점으로 열사의 땅으로 출장길에 올랐을 때였다. 중동인 특유의 선민의식, 회교도 특유의 아집과 풍습은 고사하고 그들과 상담하기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다.
호텔에서 시간 약속은 물론 중요한 상담마저 깨어버리는 것은 모두가 그들의 알라신의 뜻으로 돌려버리기 일쑤였다. 사막에서의 고독, 지구 저편에 있는 가족들의 얼굴들이 그리워질수록 나는 하루 하루를 성모님께 묵주의 기도를 바치면서 몰래 숨기고 간 묵주알을 굴렸다. 하루 몇차례나 살라시간(회교도들의 기도시간)에는 온 시가지가 떠들썩한 그들 속에서 성모님은 과연 나의 기도를 듣고 계신가? 주일날에는 미사는 커녕 성당지붕 하나 구경할 수 없는 이곳에서 교우라도 만났으면, 아니 우리 교민이라도 만나보게 해달라고 기도 드렸다. 나에게는 너무나 신기한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성모님께서 그 황량한 사막에서 작은 소리로 바친 나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인가? 리야드를 거쳐 젯다에 도착한 날이 토요일. 여장을 풀고있으려니 보상사에서 전화가 온 것이다.
『정형, 내일 호텔로 갈 터이니 기다려 주시오. 미사참례 갑시다』아니 이게 무슨말인가? 나는 깜짝놀라 자초지종을 물었다. 보상사에 근무하는 그는 나의 입국 비자발급시 (사우디는 사전발급) 서류 등을 챙기다가 가톨릭 신자라는 것을 알았단다.
다음날 아침 나는 그의 가족들과 같이 승용차로 어느 교민이 사는 지하실로 안내되었다. 주위 사람들이 눈치채지 않도록 띄엄띄엄 도착하는 교우들 50여명이 모이자 나는 또 한번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날이 「알타그르」 병원에 근무하는 한국 간호원 자매 7법의 영세식을 겸한 미사시간이었다.
비공식적으로 나타나신 찰란서 주교님께서 집전하신 영세식, 미사에 참례하며 예수님께 감사의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부활 제 5주일을 보냈다. 오랫만에 받아본 주보 젯다주보 1호 주보의 내용에는 추기경님의 부활메시지, 사목위원. 성모회·요셉회의 활동내용 등이 더더욱 나의 가슴을 뛰게만들었다. 회교도가 아니면 메카에도 못가보는 철저한 그들의 종교의식 속에서 숨어서라도 성체를 영할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느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리라. 오늘도 젯다에서 가져온 주보 1호를 보면서 뜨거운 열사의 땅에서 주님의 은총을 가득히 안은채 서로를 사람하며 이국땅에서 나눔에 여념없는 젯다공동체에 뜨거운 사랑을느낀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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