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은 유난히도 긴 장마와 더위에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게다가 물난리까지 겹쳐서 몹시도 길고 우울했던 적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길가에는 낙엽이 뒹굴고 있네.
오늘은 바쁜 아침 출근길에 앞차가 지나면서 흩날린 낙엽이 차창에 부딪쳐 문득 20여년전에 헤어진 성가대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라 이 글을 쓰고 있네. 우리가 학생시절에 어른들이 가끔『마음은 청춘인데…』하시면서 변해버린 자기 모습에 시간의 무상함을 탓하시던 말씀이 바로 오늘의 우리가 되어 버리고 말았네.
날씨가 더워지면 벌써 성모승천 미사 준비를 위한 합창연습에 땀바가지를 뒤집어 썼었고 첫눈발이 흩날리면 하늘이 쳐다보이는 블럭으로 쌓아 만든 창고에서 손발을 불며 쭈구리고 않자 성탄 노엘미사곡 연습에 열기를 뿜어댔고 꽃봉우리가 맺히면 부활준비에 바빠서 학교 과제가 밀려 교수님께 궁색한 변명도 드렸고 그래도 성당일이 첫째라고 생각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우리가 그런 아들딸을 가진 부모가 될 줄이야 어디 상상이라도 해 보았겠는가?
살기에 바빠서 쫓아 다니다보니 벌써 중년을 넘어서는 고갯마루에 와서 보니 어디론지 뿔뿔이 흩어져 버린 친구들이 더욱 보고 싶어지는 마음은 곧 나이를 먹고 말았다는 증거인가 보네. 근래에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성당에서 대미사곡을 들을 때마다 예외없이 떠오르는 성가대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려보면 어느새 눈물이 핑돌아 미사때 분심마저 들때도 자주 있다네.
보고싶은 친구들이여, 이럴땐 반백이 된 원숙함으로 다시 모여「아뉴스 데이」「쌍뚜스」「빠니스 안젤리꾸스」등 우리가 즐겨 부르던 합창을 다시 불러보고 싶다네.
그 당시 이문동 성당은 왜 그렇게도 추웠고 더웠는지 하기야 모두들 어려운 경제 탓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그곳이 늘상 내 고향 성당 같은 느낌은 지금도 지울 수가 없네. 성당 이래야 조그마한 군용 콘셀으로 까만 칠을 한 양철 지붕에다 마루바닥에 않아 미사를 드렸고 부속 건물이래야 우리 학생회가 주동이 되어 블럭으로 쌓아 만든 가건물에다 바닥은 흙이였고 지붕은 겨우 눈비를 막을수 있을 정도인 창고 안에서도 외국에서 갓 오신 신부님을 모시고 일반 교우ㆍ학생회ㆍ성가대 모두 혼연 일체가 되어 하느님의 영광을 하늘 더 높이 외쳐 대던 그때가 정말 내 일생을 통하여 가장 굳고 튼튼한 신앙을 쌓았던 때라고 기억 되네. 겨울철이면 찬마루 바닥에서 성가를 부르다 보면 발은 이미 아무 감각이 없는 나무토막처럼 느껴졌고 여름엔 까만 양철 지붕이 닳아서 성당 안이 한증막으로 변해 버려도 거기서 지휘봉을 꽤나 정열적으로 휘두르다 보면 온 몸은 땀으로 젖어서 물에 빠져 버린 사람들처럼 되었어도 마음과 마음이 닿은 그곳이 자꾸만 그리워지는건 왠일일까? 그 당시는 그리 쉽지도 않았던가.
보고 싶은 친구들이여 지금은 우리가 그 당시 우리 같은 아들 딸들을 두고 방석이 깔린 고급 의자에 앉아 화려한 백열등 밑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지않는가? 우리 아들 딸들은 고급 대리석 바닥위에 서서 화려한 전자오르겐 반주에 맞추어 뜨거운 난방때문에 땀을 흘리며「아뉴스 데이」「쌍뚜스」를 부르고 있지 않는가?
지금 나의 머리에는 아리따운 대학생의 얼굴로 영원히 남아있는 친구들의 얼굴이 한사람 한사람 지나가고 있네. 그러나 얼마 전에는 레지나가 독일에서 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한동안 몹시 마음이 아프게 지냈다네. 이시도로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달시시오는 캐나다로, 아녜스는 마산으로 로사는 광주에서 산다네.
어느 해에는 대영 극장을 빌려서 성탄 미사를 지낼 때는 오케스트라를 동원해서 엄청나게 화려한 미사를 드리기도 했었지、그때 반주를 해주던 친구들은 우리나라 음악계의 중진으로서 교수가된 친구들도 있지, 이 모두가 내 신앙생활에 가장 잊혀지지 않는 추억들로 남이 있다네.
보고 싶은 친구들이여, 지금쯤은 모두 각 본당에서 튼튼한 본당의 주춧돌로서 사목에 한몫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하네. 요사이 서울의 성당은 얼마나 잘들 짓고 있는가?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 지어놓고 나면 불과 2~3년이 지나면 너무 좁다느니 어쩌니 해서 부숴버리고 또 다시 지어야 한다는 분들의 목소리가 웬지 그렇게 상쾌하게 들리지만은 않고 심지어는 서울의 어느 성당은 예배당에서나 하는 근교에 넓은 땅에다 기도원같은 것을 짓겠다고 시골 농민들에게서 싼값에 땅을 사들여 그 땅값이 뛰었다고 좋아하는 사목 위원도 본적이 있네. 게다가 그 땅에 멋있는 건물을 지어서 본당 교우들의 자녀들이 여름방학을 하면 한해 한번씩 피정을 시키기 위해 돈이 필요하니 본당 교우들 집에다 기금마련 봉투를 돌린 사목위원님들도 계셨으니 참으로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잘 살게되었는지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네.
우리 가톨릭은 일찍 예배당과는 달리 가난하고 병든 형제 자매를 위한 무료 급식소, 불쌍한 전쟁고아ㆍ미망인을 위한 손길을 펴서 그래도 내가 가톨릭신자라는 뿌듯함 마저 느끼곤 하였는데…. 친구들이여 우린 이제 시골 공소에 눈길을 돌리고 버림받은 형제 자매들에게 남아도는 본당 돈을 돌려주어야할 때가 온 것 같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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