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거신 전화는 결번이오니 번호를 확인한 후 다시 다이얼을 돌려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집 전화가 결번이라니 그럴리가 없어 내가 번호를 잘못 돌리게 틀림없을 거야」
이렇게 굳게 믿으며 다시 다이얼을 돌렸으나 어이없게도 대답은 같았다. 그래서 전화기가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고 이번에는 가게로 전화를 걸었다.
역시 신호만 갈뿐 받는 사람이 없었다. 설마했던 공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문득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지난 휴가를 끝내고 집에서 나올 때 어머님께서 내게 하신 말씀이었다. 『윤수야, 엄마위해서 기도 좀 해줄래? 요즘 어음때문에 많이 힘들거든』
집에 있을 때도 말일이 되면 어음을 막느라고 고생하셨던 어머님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좀체로 불길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집안식구들에게 사고가 생긴게 틀림없었다.
일주일을 긴장과 초조함으로 보내고 일요일에는 학생처장 신부님께 허락을 받아 아침일찍 서울로 올라갔다. 집에 도착하여 보니 어이없게도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아무도 없었다. 옆집 아줌마에게 여쭈어보니 얼마 전에 모두 어디론가 갔다고만 할뿐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어떻게 이럴수가 있단말인가. 눈물마저 핑 돌았다.
『제발 아무일도 없어야 할텐데, 제발 아무일도 없어야 할텐데.』하고 속으로 울부짖으며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다녔다. 오후 늦게야 간신히 막내 이모를 만날 수 있었으며 모든 사건의 전모를 알 수 있었다. 『네게 곧바로 연락하려고 했었는데 엄마가 말리더구나. 공부하는데 방해된다고. 윤수야, 마음 굳게 먹어. 곧 모든게 괜찮아질거야. 이모부와 함께 힘써 볼께』
그러나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사건의 경위는 예상한 대로였다. 이모 말에 따르면 부도가 아주 크게 연쇄적으로 나서 어머님은 구치소에 수감되셨고 집과 가게, 공장 모두 압류되었으며 누나와 동생들은 사글세방을 얻어서 살고있다는 것이었다. 실로 눈앞이 캄캄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학교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일까. 도대체 우리 가족이 무엇을 잘못했길래 하느님께서는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것일까. 학교생활도 흥미를 잃었다. 이 지경에까지 이른 지금, 과연 나의 학교생활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생각하다 못해 학생처장 신부님께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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