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병원에서 환자들을 위해 일을 하기시작한 지 불과 한달도 못되어서의 일이다. 병자성사를 청하는 사람이 있어서 병실로 갔다. 사람들이 모두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가 며칠 안 있어서 우리 곁을 떠나야 하는 사람이라고 들었다. 물론 가족들도 알고 있었고 주위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데 본인만이 모르고 있었다. 병세가 악화되어 이제 병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야 한단다. 가족들은 본인에게 알리는 것이 너무 잔인한 것 같다며 좀처럼 동의를 하지 않았으나 십여분간 설득을 해서 결국은 본인에게 알리는 허락을 얻어냈다. 환자의 상태는 정신도 말짱했고 그리 아파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어디가 아파서 입원을 했습니까?』
『허리가 좀 아파서 왔습니다』
『입원 후에 좀 나아졌나요?』
『아뇨』
『그럼 당신 기분에 고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예, 틀림없이 나을 것입니다』
나는 할 말을 잊었다. 나는 조심스레 그의 표정을 살피면서 이야기했다.
『내가 살고 있는 사제관 식당에서 유리창 맞은편에는 영안실이 있습니다. 식사시간이면 영안실로 시신이 들어가거나 나가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그래서 그때나마 나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곤 합니다. 비록 이렇게 건강하여 환자들을 돌보고는 있지만 언젠가 나도 저렇게 가야한다고 생각하면서 죽음을 묵상합니다. 그렇다면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당신은 더더구나 죽음을 묵상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는 그의 표정을 읽어가며 조심스레 말을 계속했다 내 말을 잘 들어주고 있었다. 그래서 의사들이 당신의 병에 대해 좀 염려하고 있다고도 해 보았고, 좀 고치기가 힘이 든다고 하더라고도 해 보았고, 아무래도 암인것 같다고도 해 보았으나 환자는 침착하게 듣고 있으면서 초조해하거나 당황하는 눈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사형 선고(?)를 내릴 용기를 얻었다.
『놀라지 마십시오. 당신은 간암입니다. 백방으로 노력을 해보았지만 의사들이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병자성사를 받은 후에 중환자실로 가야합니다. 중환자실에 간 후 당신은 다시는 나올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죽음을 준비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당신 없는 이 세상에 외롭게 살아가야 할 당신의 아내에게 혹시라도 섭섭하게 해준 일이 있으면 화해하고 못다한 사랑의 표현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재산 관계나 이웃과의 관계에서 아직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 있으면 빨리 해결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동안 하느님의 뜻을 거스른 일이 있으면 진정으로 뉘우치고 고해성사를 보고 마지막 영성체를 하도록 합시다』
그는 모든 것을 다 잘 받아들였고 자기 아내를 불러 손을 꼭 잡아 주고는 다른 한손으로 자기 아버지의 손을 잡고 애써 눈물을 참고 있었다.
『나하고 약속했죠? 결코 초조해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눈물을 보이지 않기로. 그리고 영원한 하느님 나라에서 다시 만나기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의 마지막 고백을 듣고 가족들을 모다 놓고 병자성사를 주었다. 그는 곧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며칠 후에 나는 그의 장례미사를 봉헌했다. 한달정도 지난 오늘도 가끔 그의 모습이 떠오르고 그때마다 그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를 드리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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