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구 새 교구장으로 오까모도 데쓰지(岡本鐵治)를 임명한다」. 1942년 1월 3일 주일본 교황사절 앞으로 도착한 교황 삐오 12세의 전문(電文)이다. 오까모도 데쓰지는 최초의 한국인 주교인 고(故) 노기남 대주교의 일본이름. 당시 한국교회의 어려웠던 상황을 이 이름에서 쉽게 감지할 수 있다. 노 주교의 주교성성은 근 1년만인 그해 12월 20일에야 가능하였다. ▼한국인 최초의 교구장 주교 탄생은 금년 7월 30일 작고한 오기선 신부의 노력과 기지로 결실을 맺은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노기남 신부의 서울교구장 임명과 같은 날짜로 전임자 원 하드리아노 주교의 교구장직 사임수락도 동시에 발표되었다. 아마도 이것이 한국교회사상 최초의 교구장직 사임 수락 및 새 교구장 임명일 것이다. ▼당시 서울교구장 교체는 일제치하에서 하나의 사건과 같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와는 달리 지난 10월 31일 안동교구장 두봉 주교의 교구장직 사임수락과 함께 새 교구장 주교에 박석희 신부의 임명이 발표되었다. 48년전 이루어진 서울교구장의 교체와 최근의 안동교구장 교체는 한국교회의 어제와 오늘의 차이를 여러 각도에서 보여주는 듯하다. ▼48년 전 서울교구의 사목을 한국인에게 이양한 원 주교와 안동교구의 사목을 한국인에게 이양한 두 주교는 모두 빠리외방전교의 소속이다. 전자는 일제치하에서 일본인에게 사목권을 넘겨주지 않으려는 고육지책이었다. 그 반면에 후자의 경우는 한국교회의 일선사목이 이제 더이상 외국인에 의해 주도될 수 없다는 결단의 결고였다. 마치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보는듯한 느낌이다. ▼빠리외방전교회는 1831년 조선교구 설립과 함께 한국교회 사목을 주도하여 왔다. 1942년 서울교구의 사목권을 이양한 후에도 대전교구(1948~1965)에 이어 1969년 안동교구 설정과 함께 안동교구 사목을 맡아왔다. 두 주교의 안동교구장직 사임은 빠리외방전교회가 한국에서의 소임을 사실상 마감한 셈이다. 그러나 그 선교정신은 한국교회 안에서 영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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