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두번이나 다녀가신 요한 바오로 2세, 바로 작년 성체대회에 오셨던 그분이시기에 그저 주교로서 교황을 만나 뵈옵다는 기분과는 전혀 다른, 잠시 떨어져서 일하던 자식이 부모님을 찾아 뵈옵는듯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10월 15일 월요일, 아침7시에 교황님 개인성당에서 미사를 공동집전하고, 오전중에 7명의 주교님이 개인 알현을 하시고 이어서 오후1시30분에는 전원이 오찬에 초대되어 함께 식사를 하는 기쁨도 누렸다.
식사중에 있었던 대화는 마치 가지회견 같은 주교들의 짓궃은 질문에 가볍게 응답해 주시는 부드러운 분위기였다. 동유럽의 변화를 가져오는데 큰 역할을 하셨다는 칭속에 빙그레 웃으시면서 당신은 별로 크게 한일은 없지만 위로부터 내리는 하느님의 섭리였다고 대답하시고는 파티마의 성모님의 약속대로 된것이라고 하셨다. 파티마의 성모님 얘기는 물론 사적 계시라시면서 공적 계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설명하시고는 유고의 메주고리에 성모발현을 예로 드시며 주교들이 반대를 하여도 많은 사람들이 그리로 몰려들어 회개하고 많은 은총을 받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하시면서 웃으셨다. 많은 사적 계기가 있는데 그 메시지는 첫 복음인『회개하라, 보속하라』는 공적 계시와 일치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셨다. 윤공희 대주교님이 나주 성모상이 피눈물을 흘리신다고 하시자, 여러분은 사적 계시가 많은 시대에 살고 있으니 지혜롭게 처신하라고 당부하셨다.
얘기는 다시 공산주의 몰락으로 되돌아가면서『막시즘은 이제 망하고 있는데 남미의 신학자들은 어떻게 무엇을 생각할것인지 궁금하다』면서 그 신학이 야민적 자본주의를 거슬러 창안되었다는 점은 일리가 있다(right) 하겠지만 막시즘의 원리위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은 틀린 것(wrong)이라고 두번이나 반복하시며 힘주어 말씀하셨다.
우리에게 해방신학, 정치신학이라 불리는 현대신학에 대하여 바른 인식을 가지라는 교훈으로 받아들여졌다. 국내에서 가끔 해방신학에 대하여 마치 성좌에서 인정한 것처럼 선전하는 신학자들을 만나게 되는데 교황님은 분명히 틀린 (wrong) 것이라고 강조하셨다는 점을 국내 신학자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막시즘에서 무신론을 빼면 경제이론으로는 그만한 것이 다시 없다고 하는 가톨릭 신학자를 만나 보았다. 아직도 그런 신학자가 있다면 막지즘이 실패한 이유뿐 아니라 교황님의 「틀린것」이라 하신 교훈도 함께 반성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자본주의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반드시 계급투쟁의 방법을 취해야 한다는 막시즘의 원리는 그리스도교의 사회교리와는 분면히 모순되는 것임을 상기해야 한다. 계급투쟁이 아니라 정의로운 법제정으로 자본주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유도하는 사회정의를 실현시키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정의와 평화, 사랑과 일치를 강조하는 그리스도교의 사회교리가 미움과 투쟁을 전제로 하는 막시즘과 공존할 수는 없다.
점심을 함께 드신 교황님은 오후에도 4명의 주교를 만나 주셨고 이튿날 화요일 오전에 남은 5명의 주교님을 개인적으로 만나 주시고 전체 알현으로 모든 일정을 마쳐 주셨다. 교황님 말씀대로 10월 15일과 16일은 정말 한국의 날이었다.
전체 알현 시간에 나는 한국 주교님들과 한국 교회의 이름으로 성하께 인사를 드리고 한국교회의 빛나는 발전상과 동시에 우리가 격고있는 갈등과 교회에서 멀어진 근로자들과 가난한 이들을 다시 품에 안을 수는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는 일이 우리의 가장 긴박한 사목적 임무라고 말씀드렸다.
나의 원고를 교황님께서 먼저 보셨을리가 없었다. 그러나 교황님의 훈시 말씀은 나의 인사말씀을 미리 보신것 같이 조목 조목 대답해 주시는 듯 세밀하였다. 교황님도 성체대회에 참석하신 기억을 되살리시며 한국교회의 발전상을 칭찬하시고는『그러나 여러분은 두려움을 가질지언정 자랑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로마서 11,20) 하시며 일침을 가하시는 것이었다. 이어서 지난 7월 인도네시아 주교회의 결론을 인용하시면서『사회의 불우한 구성원들, 특히 노동자들과 가난한 이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고 일깨워 주셨다.
주교를 자신은 물론이고 주교들이 협력자로 선택한 사제들에 대하여『가난함에서 나오는 단순한 생활 양식으로 모든이에게 기꺼이 도움이 될 자세를 갖추고 그들의 기쁨과 슬픔을 나누면서 양떼에 속한 모든이에게 가까워질 수 있어야 한다』는 작년 논현동 성당에서의 말씀을 상기시키셨다. 이어서『훌륭하고 효과적인 복음의 교역자가 되기 위해서는 주교들과 사제들은 기꺼이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이탈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시면서 우리의 기본 자세를 강조해 주셨다.
『한국 교회는 감사하기(observe) 위해서가 아니라 봉사하기(serve)위해서, 즉 아시아인들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파견된 것 』이라고 지난날의 우리 자세를 꾸짖으시는듯 말씀하시고는 포기, 이탈, 겸손, 단순성, 침묵을 가장 존중하면서』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됨을 드러내라고 하셨다. 국내에서 가끔 논란이 되어온 사회참여에 관하여『세속 임무와 노력은 평신도들의 영역이다. …사목자들이 모든 일에 정통하여 무슨 문제가 생기든지… 언제나 즉석에서 구체적인 해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것은 사제들의 역할이 아니다』라는 사목헌장 43항을 인용하시고는『사제들과 수도자들은… 특수한 부르심을 받은 존재들인만큼 그들은 순전히 세속적인 일이나 당파적인 정치에의 개입에 대한 제한을 뜻하는 다른 의무를 지니고있는것』이라고 단언하셨다
사회참여는 평신도들의 고유한 분야이므로 주교와 사제들은 평신도 양성에 힘쓰라고 당부하셨다. 특히 그리스도교적 양심을 갖추도록 평신도들을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하시고『가정, 시민사회, 문화발전, 경제계, 정치참여와 같은 것들은 사랑, 정의, 자유, 진리, 평화라는 복음의 가치로 깊게 물든 남ㆍ여 가톨릭 평신도들이 노력을 기울일 전문 분야인 것입니다. 세속 분야는 그들의 활동과 기술적 전문 지식의 자연스러운 통상적인 환경입니다』하시며 평신도들의 역할을 강조하셨다.
성직자와 평신도의 사회적 역할의 분담을 상세히 설명하신 다음 혹시라도 우리들의 마음이 언짢아지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친애하는 형제 주교님들, 지금까지 여러분의 방문에서 영감을 받아 몇가지 생각을 사랑과 이해를 가지고 말했습니다. 그 목적은 여러분의…기쁨과 슬픔을 어떻게든 여러분과 나눌 수 있게 되고자 하는데 있습니다』하시며 당신의 충고가 쓰라렸다면 당신이 그런 충고를 하시게 된 목적이 사랑과 이해에서 기인된 것임을 상기시키시고『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여러분을 모두 사랑합니다』(고린 전16, 24)라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으로 끝맺으셨다.
사랑에 넘치는 교황님의 말씀을 우리 모두 다시 한번 깊이 묵상하며 한국 교회의 건전한 발전을 위하여 전심 전력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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