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가톨릭신문의「올바른 대부모 관계정립 급성무」라는 기사를 읽고 크게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예비기간 중에 대부모를 선정, 신친관계의 끈을 두텁게 묶는다는 부분에서는 부끄럽게도 나를 되돌아보게 했다.
우선, 대부모와 대자녀간의 관계를 보면 형식적인 관계도 많지만 또 한편으로 너무 적극적이라서 다른 신자들이 보기에 소외감과 함께 더러 민망할 때도 많다.
거의가 한 본당 안에서의 관계이기 때문에 서로가 신앙 안에서만의 관계로 끝나지 않고 실생활에 까지 자연히 이어지기 마련이다. 미묘한 점이 많아 어렵다면 상당히 어렵다고도 볼 수 있고, 신앙측면에서 비켜나서 더러는 반목하는 경우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가톨릭에서 여러가지 좋은점 중의 하나인「대부모ㆍ대자녀」관계가 신앙 안에서 서로가 잘 조절된다는 면이 보다 더 좋은 관계는 없으리라 본다.
그런 반면에 대부모와 대자녀가 영세나 견진 후에 전혀 소식도 모르는 관계로 끝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나 역시 견진 대부모님을 신부님께서 단체로 정해주시는 바람에 도대체 그분이 누구신지 어느 본당에 계신지도 모르고 무조건 저분이 대모님이 되실 분이라는 소개 한마디로 대모로 정해지고 난 뒤 그날 이후로 전혀 소식을 알 수가 없었다.
특히 그때 우리는 군인가족이었고, 남편들의 근무처에 따라 거의 1년에 한번씩은 이동이 있는 형편이었으니 서로가 찾고 싶어도 찾기가 매우 힘들었다.
또 마침 군종신부님은 제대 후 바로 로마로 떠났고, 그저 대모님의 본명ㆍ성명과 함께 군종후원회를 위해 무척 큰 힘이 되어주시는 분이시라는 것만 알고 있었고, 도대체 이런 대부모 대자녀 관계라는 것은 정말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중 십년도 훨씬 지난 88년도에 레지오 수첩에서 우연히 대모님으로 기억되는 분의 본명ㆍ성명을 찾았다. 여러가지를 미루어 보아 대모님이 분명하다는 확신으로 언제 어디서, 어느 신부님이 계실 때 견진성사 받았다는 설명과 함께 편지를 띄었다.
대모님께서도 매우 반가워하시며 항상 이름 모르는 대녀들을 위해 묶어서 기도하신다며 당장 답장을 보내주셔서 우리는 다행스럽게 연결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 가톨릭 신자 중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사정의 미아가 많을 줄 안다.
그때 영세ㆍ견진 받은 사람들의 무성의도 컸지만 지금도 이런 바람직스럽지 못한 대부모 대자녀 관계가 많은데 우선 앞으로 이런 일부터 지양이 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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