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신부님은『듣고보니 그것 참 딱하게 되었구만. 하지만 우리 한번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구. 과연 윤수가 신학교를 나간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윤수가 사회로 나간다면 가족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지? 물론 함께 있으면서 가족들의 고통을 나누는 것도 중요해. 그렇지만 그런다고 사태가 뒤바뀌는 것은 아닐게야. 더 중요하고 큰 것을 잊어서는 안되지. 내 생각엔 그냥 윤수가 있는 그대로의 환경에서 조금 괴롭기는 하겠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게 좋을것 같아. 우리들이 자랑하는 비장의 무기가 있잖아? 기도말야. 하느님이 윤수와 윤수가족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열심히 기도해봐. 꼭 응답이 있을거야』
신부님의 말씀이 맞다. 내가 신학교를 그만 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고 방관만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고통스런 생각들이 머리속을 교차하며 지나갔다. 무엇이 과연 중요한 것인가. 가족들의 고통마저도 함께 하지못하면서 어떻게 모든 사람들의 모든 것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신학교를 나간다는 것도 역시 최선의 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가족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신부님의 말씀을 따르기로 했다. 가장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나 그 후로도 계속 가족들에 대한 죄스러움은 더해만 갔다. 밤에 잘 때도 고생하시고 계실 어머님의 모습이 떠올라 소리없는 눈물을 삼키다가는 이내 깔고 있던 요를 걷고 맨바닥에서 자곤 했다. 밥먹을 때도 어머님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차마 수저를 들지 못했던 적이 많이 있었다. 가족들에 대한 죄스러움은 열심한 기도 생활로 대신하는 수밖에 없었기에 묵주의 9일기도를 시작했다. 9일기도 책에 따르면 묵주의 9일기도를 통해 청하는 내용은 어떤 것이든지 다 들어주신다고 약속하셨다고 한다. 매일매일 정말 간절히 기도했다.
『주님, 많이 어렵고 힘든 저희 가족들 좀 도와주세요. 특히 어머님께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셨는지 당신이 잘아시잖아요. 그런 어머님께 이런 시련을 주시다니, 이건 말도 안돼요. 제발 어머님 좀 도와주세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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