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초 KBS 1TV 전파를 타고 5일간 연속적으로 방영된 TV드라마 「가시나무 새」는 여러가지 의미에서 선풍적인 화제를 뿌렸다. 비록 넓은 지면은 아니었지만 국내 모든 일간지들은 일제히 나름대로의 반응을 보여 호기심어린 사람들의 관심을 대변해 주기도 했다.
매스컴의 반응 코멘트에서 이미 간파할 수 있듯이 「가시나무 새」는 일단 성공적인 방영이란 결론을 얻어냈다. 물론 이 결론은 TV를 시청한 일반 국민들 대다수가 내린 것으로 봐야 옳을 것이다. 약간의 걸림돌이 있었고 또 제동이 걸릴 수 있는 상황도 물론 있었지만 흔히들 얘기하는 드라마 자체의 작품성·예술성이 이러한 걸림돌들을 충분히 만회했다는 것이다.
가시나무 새의 강점은 역시 소재의 선택에 있는것 같다. 소재자체의 파격성에서부터 이 작품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소설로 출발한 작품이 TV극으로 발전한 것도 바로 소재가 내포하고 있는 최대의 잇점이 제작자의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얘기가 흥미를 상실한지는 이미 오래다. 소설이든, 영화든, TV극이든 상식적인 얘기가 각광을 받기위해선 모두가 공인할 만큼의 뛰어난 작품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 보편타당한 소재를 화제위에 올려놓을 수 있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쉽지가 않을 뿐더러 작가 자신이나 제작자 스스로에게 뛰어난 예술감각·무한한 노력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70년대에 씌여진 이 소설이 사람들의 시선을 받은 것은 83년 TV드라마로 제작, 방영이 되고나서부터이다. 미 위너브러더스사가 제작, ABC TV를 통해 10시간 짜리 드라마로 방영된 「가시나무 새」는 그해 에미상 6개 부문, 골든 그로브상 5개부문을 휩쓸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그 인기, 화제를 뒷받침한 것은 앞서 지적했듯이 등장인물, 주인공들의 평범치않는 삶의 모습들이다. 아니, 등장인물 설정에서부터 가시나무새는 「인기」라는 잠재력을 갖고 있었던 셈이다.
소재선정의 강점과 더불어 TV드라마 「가시나무 새」는 방대한 원작 내용을 썩 잘 간추려 극화했다는 평이다. 오히려 원작 속에서 찾아보기 힘든 등장인물들의 개별적 고뇌, 갈등, 사랑, 애증의 상황들을 실감있게 그리고 밀도있게 표출했다는 평도 있었다.
매스컴의 보도나 여론에 따르면 「가시나무 새」가 성공적인 평판을 얻어낸 것은 작품전체에 배경으로 깔린 호주의 광활한 대지, 그 정경을 무대로 신앙과 사랑, 신앙과 야망 등 인간의 진실한 신앙과 사랑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펼쳐낸 작품성에 있다는 것이다.
성직자와 여인의 사랑이야기를 골자로한 이 작품이 통속멜러물에 머물지 않았던 것은, 그보다 시청자들이 그렇게 느끼지 않았던 것은 그 통속적인 사랑이야기를 또다른 사랑으로 한 단계 승화시켜 보여준 연출의 기법, 깊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시대를 이은 한 가정, 한 여인의 애증과 한을 사랑이란 무기로 끝내 풀어내도록 유도한 상황전개, 그 과정에서 드러난 작품의 깊이와 진실성은 시청자들로부터 통속적인 개념에서 벗어나도록 유도해 냈다는게 일반적인 여론인 것 같다. 우리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선 찾아보기 힘든, 실로 인정해 줄 만한 제작 기술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객관적이고 일반적인 호평을 얻은 반면 「가시나무 새」는 특정한 사회와 계층을 소재로 선택했다는 점에서 그 사회에 속해 있고 그 계층과 함께 호흡하는 사람들에겐 다른 반응을 유발시켰다. 닷새동안 10시간에 가까운 반영시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TV앞에 묶어놓은 「가시나무 새」는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매력과 함께 흥미, 재미, 그리고 박진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시청자 속에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안타까운 심정으로, 드라마의 진행과정을 지켜본 사람들도 많았다. 사회적인 통념상으로도 정당치 못한 이야기의 줄거리가 가톨릭신자들 사이에 어색하고 나아가 걱정스럽게 비쳐질 수 밖에 없음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반응일지도 모른다.
이미 각 언론사가 보도로, 더구나 사설에서까지 「가시나무 새」의 반영과 이에 대한 교회의 반응등을 소상히 중계한 바대로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상당히 충격적일 수 있는 내용들에 대한 교회의 입장, 신자들의 의견은 크게 혼란돼 있었다. 첫날 방영 즉시 매스컴위원회는 물론 본보에까지 신자들의 항의가 쇄도한 사실이 이같은 분위기를 그대로 대변해 주고있다.
「부분적인 사실이 보편적인 것으로 잘못 이해될 수 있다」「이처럼 파격적인 내용을 소화해 낼 정도로 우리 사회가 성숙돼 있지않다」「교회의 이미지에 큰 손상을 줄 수 있다」는 등등… 이들의 한결같은 지적과 우려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공감이 가능한 것들이었다.
하나의 소설작품과 TV드라마가, 소설이나 드라마 자체일 뿐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해를 하고 보았을까 하는 문제에 대한 우려이다. 작가가 마음대로 상상하고 그려낼 수 있는 문학·예술등 창작의 세계를 현실 그 자체로 혼돈할 수 있는 우(憂)를 염려한다는 것이다.
사제의 내면적 삶의 모습은 사제가 아니고는 정확히 그려낼 수가 없다. 따라서 콜린 맥콜로우가 빚어낸 가시나무 새의 사제상과 교회는 그녀의 극히 제한된 체험과 상상력으로 무장한 작품이 고 보편적인 현실로 여겨질 때 작가가 선택한 모델과 그가 속한 구룹은 본의 아니게 심판대 위에 서게된다.
제한된 체험과 상상력의 작품이 부정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을 때 심판의 칼날은 매섭기 짝이 없다. 때문에 작가의 길·창작의 길은 결코 쉽지 않은 형극의 길이어야 하는지 모른다.
성직에 대한 모독·교회 정신에 명백히 위배되는 몇 가지 요소를 지닌 콜린 맥콜로우의 가시나무 새 역시 가톨릭 교회로서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비쳐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시나무 새를 끝까지 조용히(?) 시청한 것은 막혀있던 우리 사회의 눈과 귀, 그리고 입을여는 하나의 통로가 되고자 함이었다 그것은 또 우리 국민과 신자들의 문화적 소양과 성숙을 믿고자 하는 작은 소망의 결정체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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