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에는 희생이 따라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담배도 줄이고 식사량도 줄였다. 나의 모든 정성을 묵주알에 담아 한알 한알 하느님께 바쳤다. 모든 학교생활에도 전보다 더욱 열심히 임했다. 운동도, 작업도, 공부도, 기도도, 나를 잊어버릴 정도로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나 역시 지울 수가 없었다. 정신없는 가운데 2학기가 모두 끝나고 겨울 방학이 시작되었다. 수도원에서의 생활 역시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설날 아침에 나온 떡국은 나의 가슴을 한없이 할퀴어 놓았다. 설날이 조금 지나자 수도원에서는 여름방학과 마찬가지로 일주일간의 휴가를 허락해 주었다. 그러나 막상 아무 곳에도 갈 곳이 없었다. 일단 누나와 동생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가 보았다. 조그마한 방에 물건을 싼 라면박스들이 을씨년스럽게 놓여있었다. 누나와 나는 눈물만 보일뿐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누나, 고생 많았어』
『…』
『나만 빠진 것 같아서 학교를 그만 둘까 하고 생각도 해보았어. 그치만…』
『그래, 네 마음 잘 알아. 그래야지. 학교는 절대 그만두면 안돼. 수도원도 마찬가지고. 난 네가 항상 부럽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고 그래. 이 고통도 잠깐일거야. 언젠가는 좋은 날이 있겠지 뭐. 너 절대 잊으면 안된다. 넌 우리 식구 모두의 정신적인 지주라는 것 말야. 알겠지?』
저녁 늦게까지 누나와 동생들과 함께 있다가 또 들를것을 약속하고 거리로 나왔다. 밤하늘의 별을 보니까 더더욱 어머님이 그리워졌다. 지금쯤 얼마나 나를 원망하고 계실까. 내일 어머님 면회를 가기로 했는데 과연 어떤 말을 해야 할까 걱정하다 보니 기쁘기 보다는 겁이났다.
구치소에는 면회를 온 사람들로 상당히 붐볐다. 면회 신청을 하고도 한참을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몇 번을 다짐했는지 모른다.
『눈물을 보이면 안돼. 절대로 그래선 안돼. 어머님께 웃는 모습을 보여드려야해. 나보다 어머님 고생이 더 심하잖아. 윤수, 너 절대로 울면 안된다.』
이렇게 스스로에게 한없이 다짐했다. 면회실은 협소했고 정면에 두껍게 보이는 유리벽이 가로 놓여 있었다. 조금 후 파란옷에 번호표를 부착 하고 나오시는 어머님의 모습이 보였다. 역시 웃고 계셨다. 어머님의 웃는 모습을 보는 순간 그렇게 다짐하고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솟구치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어머님의 웃음 뒤에 숨겨져 있던 눈물을 보았던 것이다.
『어머니!』
애써 참고 계시던 어머님께서도 눈물을 보이셨다. 한동안 서럽게 울었다. 죄스러운 맘, 안타까운 맘, 이런 것들이 한꺼번에 봇물터지 듯 눈물로 터져버린 것이다. 처녀시절에는 일찍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를 대신해서 이모들과 삼촌 뒷바라지로 애쓰셨고, 시집와서는 아버지 병환때문에 있는 고생、없는 고생 다하시다가, 돌아가신 후에는 슬퍼할 겨를도 없이 우리 4남매 보살피시느라 잠시도 당신을 위한 시간을 내시지 않으셨던 어머님, 바로 그 어머님의 땀과 눈물로 점철된 한 (恨) 의 세월을 잘 알고 있던 나는 단 한마디도 건넬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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