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예수와 함께하는 삶 돼야
내 직업이 의사이기 때문에 항상 병자들 속에서 살게 되고 또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게 된다. 고통 받고 병들이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나는 혼자 상념에 잠길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믿음(신앙)을 가진 자와 갖지 않는 자의 죽음사이에 무엇인가 분명히 느낄 수 있는 차이를 발견하고, 과연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을 믿는 이 신앙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보기도 한다.
신앙이란 히브리원어로「야다」라고 하며 기록되어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다 같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야훼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들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이 곧 하느님을 알고 또 체험하는 것으로 집약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주변에서 병들이 죽어가는 환자들 가운데서 주음의 공포와 고통을 극복해내는 제3의 어떤 힘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은 참으로 소중한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에 일천만을 헤아리는 크리스찬들이 생활하고 있으면서도 우리사회를 병들은 질곡속에서 구출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과연 크리스찬들이 능력과 어떤 힘을 주시는 하느님을 제대로 신앙하고 있지 않는가 하고 반문해 보는 것이다.
니이체는『너희들이 믿는 신(神)은 죽었다』라고 갈파하면서 오늘의 신앙인들을 비웃고 있는데 분명히 그리스도의 능력을 상실한 우리들이 마땅히 받아야할 질책이 아닌가하고 생각해본다. 사실 알맹이를 잃고 껍데기만 붙들고서있는 그리스찬에게 무슨 힘이 나올 수 있으며 이사회를 소생시킬 무슨 처방이 나올 수 있겠는가?
예수그리스도의 열두제자들 가운데 그중에서도 예수를 가장 가까이모시고 다녔던 베트로, 요한, 야고버 등이 높은 산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체현(體賢)을 직접 목격하고서도 예수그리스도가 살아계실 동안에는 그렇게도 신앙이 흔들렸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여 활동하시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두 세번 보고난 뒤 그들은 어떻게 달라졌던가를 성서를 통해서 곧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그들에게서는 능력의 힘이 발휘되었고 목숨을 내놓는대도 서슴치 않아 베드로는 그분과 같은 형태로 죽을 수 없다며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렇다면 오늘의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우리 신앙인들이 어떠한 방법으로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체험하며, 그분이 주시는 능력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해답을 찾을 수가 있을 것 같다. 예수를 알려면 당연히 그분이 하신「말씀」을 알아야하고 그분을 체험하려면 그분의 말씀대로 살고, 생활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하고 생각해본다.
사실 예수께서는 지금 우리 옆에서 성령의 모습으로 자기의 가시적(可視的)인 모습을 감추시고 지금도 우리들과 함께 살고 계신다. 그분을 과연 체험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만일 우리가 우리의 생활 속에서 그분을 체험했다면 곧 부활하여 활동하고 계시는 그분을 만난 것과 같은 결과를 낳게 되고 거기서 새로운 신앙이 솟구쳐 오르지 않을까 생각된다.
지난 가톨릭신문에서 1989년 한국에서 개최되는 세계성체대회를 앞두고 서울대교구 사제단이 피정을 하였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기사에서 각 그룹별로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그분에게서 능력을 받을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하고 기도하고 토의한 결과 그분을 체험하여야한다는 결론의 나왔다고 한다. 여기서 어떤 신부님의 강론말씀을 소개해 올린다.
시골에서 자란사람은 잘 알 수 있는데 겨울에 산하(山河)에 눈이 덮이면 개들과 젊은이들이 가장 좋아한다. 개를 몰고 손에 막대기를 들고 산으로 올라 낭만적인 토끼물이에 나선다. 토끼를 잡는데 가장 지름길은 눈 위에 찍혀있는 토끼 발자국과 토끼가 배설하고 간 배설물을 발견해내는 것이다.
이 두 증거물을 쫒다보면 결국 토끼는 발견되고 잡히게되는 것이다. 토끼몰이를 하는 사람들 중 이발자국과 배설물을 목격한 사람과 보지 못한 사람의 토끼 잡는 성공률은 하늘과 땅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를 믿는 신앙인들도 이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찾는 종국의 목표는 예수그분을 붙잡는 것이다. 그분을 바로 붙잡을 수 있는 것이 거리의 시장 속에서 눈앞의 사람을 붙잡는 것처럼 손쉬운 일은 아닐지라도, 토끼발자국을 발견하는 것 같이 우리 가운데서 활동하고 계시는 빠라크리도스(Para·옆, Chridos그리스도) 그분을 만나 (체험)는 길이 가장소중한길이 아닌가 생각한다.
세속에 시각이 고정되어 있는 우리들에게서 자기의 모습을 살짝 감추시고 계시는 그분을 만나는 것(체험하는 것)은 곧 우리의 삶에 지혜와 능력, 은총과 평화를 얻는 결정적인 계기가 아닐까 생각하여 본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루까24,13)가시적(可視的)인 성령의 모습으로 탈바꿈하시고 우리 곁에 다가오셔서 매일 걷고 계시는데도 그 이유는 평소 그분이 하신「말씀」과 레마(Rhema)체험을 소홀히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어진다.
과연 어떻게 하면 능력의 그분과 일치의 삶을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능력의 그분을 더 잘 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생활 속에서 그분을 구체적으로 체험하고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우리 믿음의 형제자매들에게 있어서 똑같은 공통된 과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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