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성가복지병원 개원 1백일을 맞아 이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홍석임 수녀가 복지병원전환과정과 그동안의 체험담을 보내왔다. 홍석임 수녀의 글을 요약, 게재한다. <편집자註>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소외되고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형제들을 위한 의료복지기관이 필요하다는 의지 하나로 운영걱정은 뒤로한채 성가소비녀들은 병원전환을 결정하였다.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감사드리며 진료 1백일이된 오늘 그동안의 전환과정을 되돌아 본다.
1943년 12월 25일 성 베드로 신부에 의해 창설된 성가소비녀회는 나자렛 성가정의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 여종이 되어 돌보는 이 없는 가난하고 병든 형제들을 간호하고 보호함으로써 그들과 한가족을 이루는 것을 고유목적으로 하는 수녀회이다.
1958년 본회의 고유정신에 따라 길음동성당 옆에서 작은 의원으로 시작한 성가병원은 30여년 동안 의원에서 병원으로, 병원에서 종합병원으로 대형화되어감에 따라 일반병원과 다를바 없는 병원이되었다.
그동안 지역사회에서 누구나 부담없이 이용할 수 있는 신뢰받는 병원으로 가난한 무의탁 환자들을 많이 돌보아주었으나 그들 모두를 수용할 수 없었다. 유료환자들의 요구에 응하다 보면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무료진료는 어려운 실정이었기 때문이다.
병원이 외형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3~4년전부터 수녀들간에 성가병원은 본래의 설립목적대로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병원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자성의 소리가 높아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1989년 11월부터 수녀회에서 3명의 수녀를 파견, 본격적인 서울 성가병원 전환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자선병원의 필요성을 확인하기 위해 설문지를 통한 의견수렴과 달동네ㆍ빈민지역ㆍ복지시설의 전국적 조사결과 서울에만도 20~30개의 달동네가 있고 한동네에 3~4백가구가 밀집하고 있었다.
1990년 1월 총위원회에서 그동안 준비한 자료를 검토하고, 전국민 의료보험제도가 실시되고 있지만 실제로 의료시혜가 부족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확인하고 한마음으로 일치되어 복지병원으로 전환을 결정하였다.
그 후 5월31일까지 기도와 더불어 유료병원구조를 정리 완료하고, 새로운 진료대상을 위한 준비를 한다음 7월23일부터 성가복지병원으로 진료를 시작하였다.
기쁨과 두려움 속에 진료를 시작한지 1백일, 4백여명의 수녀들이 일치된 마음으로 자선의료에 대한 꿈을 키워가면서도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던 많은 날들과 망설임 속에서 부딪쳐보지도 못했던 혼돈의 시간들이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
인간의 힘만으로 일을 하려던 우리들의 얕은 믿음이 부끄러워진다.『90년에는 외래환자만을, 91년에는 입원환자 ○○명만을, 92년에는 좀 더 확대』라고 세운 계획은 개원 1개월만에 변경되었다.
개원 3일째 되는날, 63세의 할아버지가 복막염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의료보험증도 생활보호대상카드도 없어 수술을 포기하고 집에서 죽을날만을 기다리다 KBS라디오 방송을 듣고 성가복지병원을 찾아온 것이다. 우리들은 자원봉사자로 수술팀을 구성, 응급수술을 하고 1층에 첫 입원환자를 받았다.
그 후 1층의 병상10개는 한달만에 부족해 9월부터 5층병동에 40개병상을 늘려 입원환자를 받았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의지할 곳 없이 떠돌아다닌 때묻은 옷을 걸친 몽뚱이 하나뿐이 사람들이며, 쉽게 치유할 수 있는 병도 점점 악화시킨 간염, 간경화, 폐결핵, 당뇨, 암, 알콜중독자들이다.
입원할 때에는 회복불능이라고 판단돼 고통이나 경감시켜주며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편안한 임종을 준비시키려고 했지만 막상 준비시키려고 했지만 막상 치료를 시작하자 그들의 상태는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고 우리들은 도리어 취업걱정을 하게 되었다.
열과 성을 대해 봉사하는 의료팀과 각 분야에서 직접 간접적으로 환우들을 위해 기도와 봉사를 아끼지 않는 분들과 보이지않는 곳에서 정성어린 후원금을 보내주는 사랑이 모아져서 이러한 기적을 만들었다고 확신하며 그분들께 감사드린다. 또한 오늘의 성가복지병원이 있기까지 먼 옛날부터 주님은 하나의 구체적인 계획으로 모든 것을 주관하셨음을 체험하였다.
술 냄새를 풍기며 남루한 옷차림으로 쓰러질듯 찾아온 환우들이 목욕부터 시작하여 환의로 갈아입고 참상에 누워있으면 우리들은 한가족이 된다. 비록 적은 인력으로 가난하게 운영되고있지만 한 형제자매가 되어 간식ㆍ내복걱정 등 처음에는 생각치도 못했던 걱정들이 생겼다.
지금도 어느 길 모퉁이에 웅크리고 않아서 찬바람을 맞고 있는 형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나의 무관심때문이며 내탓이 아닐수 없다고 생각한다.
비록 고통스럽고 외로운 여정을 걸어온 이들이지만 마지막 순간이라도 평화와 위로안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품위를 잃지않고 하느님 사람을 느낄 수 있도록 돕고 싶은 우리들의 소망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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