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4일 대구 파티마 결핵요양원에서는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 왕묵도 레지날도 신부 15주기 추모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왜관 베네딕또 수도회 동료신부 공동집전의 추모미사와 음악회 그리고 환우들의 시화전, 결핵요양원 기록 사진전 등으로 치뤄졌다.
그분이 선종한지 15년이 지나도록 결핵ㆍ나환우 등 여러사람들이 그분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않고 있는 것은 그분의 행적이 화려해서가 아니라 그분안에 숨어있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길이 감명받았기 때문이다.
그분은 한마디로 표현해 그리스도적인 청빈과 사랑의 삶을 사신 분이었다. 신부님은 1931년 사제로 서품받은 후 곧바로 한국에 오셔서 43년동안 만주 간도의 팔도구본당을 비롯하여 성주ㆍ함창ㆍ신동본당 신부로 재임하시면서 본당사목뿐 아니라 팔도구의 해성학교, 함창 상지여고 설립 등 교육사업과 성주와 공검의 나환우사업과 파티마 결핵요양원 설립등 사회사업과 신나무골 성지개발을 위한 모금운동, 성소개발에 헌신하면서 그리스도께 대한 깊은 신뢰와 사랑을 보여주셨다.
왕 신부님은 평소 수도자답게 철저하게 가난하게 사신 분이었다. 신부님이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재산이라고는 군용철침대, 이불한채, 낡은 오토바이, 타자기 그리고 몇권의 책 뿐이었다.
이러한 왕 신부님의 삶은 물질만능의 현대인뿐 만 아니라 성직ㆍ수도자와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할 그리스도적 삶의 표양이다.
그분은 외국인이면서 한국인보다 더욱 한국을 사랑한분이셨다.
만주 팔도구본당에 재임할 때에는 독립운동을 위해 망명한 이들과 그 가족 그리고 실향민들을 돌보아 주었으며, 그들의 자녀교육을 위해 각 공소마다 33개의 해성간이학교를 설립하였으며, 무료시약소를 설치하시기도 했다.
해방 후에는 7년동안 공산당에 끌려다니면서 몇차례 인민재판을 받는 등 온갖 고통과 곤욕을 치뤘지만 6.25이후 월남해 본당사목과 교육ㆍ사회사업을 편친 것은 한국에 대한 사랑에서 기인한다.
그분은 췌장암으로 2번씩 수술을 받고 인공쓸개주머니를 달고다니면서 마지막으로 결핵요양원완공, 개원한 후 40일만에 69세로 선종하셨다.
왕 신부님은 진정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며 한국의 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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