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걱정마세요. 모두 잘 될거예요』면회시간이 끝나 돌아가시려는 어머님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다. 돌아오면서 줄곧 생각해 보았지만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하느님, 정말 너무하십니다.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십니다.』
하느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성당에 가서 휴가기간 동안 신학생 방에서 기거할 수 있게 해달라고 본당신부께서 부탁을 드렸고 신부님은 기꺼이 허락해 주셨다. 면회는 격일제로 할 수 있었기 때문에 휴가기간 동안 세 번 면회를 갔었다. 하지만 어머님의 모습을 대하면 대할수록 죄스러움은 더해만 갔다. 지난 사순절에 십자가 앞에 서 계신 성모님을 묵상할 기회가 있었는데, 어머님 면회를 하면서 성모님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십자가에 못박혀서 죽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었던 성모님. 차라리 내가 못박히는 게 낫지 하시면서 죄스러움과 안타까운 마음으로 당신이 살고 있음을, 살아 숨쉬고 있음을 얼마나 부정하고 싶어 하셨겠는가! 유리벽 안에 초췌한 모습으로 죄수복을 입고 계신 어머님을 보면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어머님을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 엄청난 무게로 나를 짓눌렀고 급기야는 숨 쉬기 조차 거북했다.
이렇게 나의 길고도 긴 일주일간의 휴가는 어머님과의 만남으로 끝났다. 수도원에 돌아오자 대 착복실을 위한 피정을 했다. 피정 내내 기도했다.
대착복식 전에 어머님이 나오셔서 내가 수도복 입고 있는 모습을 꼭 보실 수 있게 해 달라고. 드디어 대착복식 하는 날이 되었다.
「주여 당신 종이 여기 왔나이다. 오로지 주님만을 따르려 왔나이다. 십자가를 지고 여기에….」
성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착복식은 거행되었다 손님들은 많이 오셨지만 어디에도 어머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님은 역시 나오시지 못했던 것이다. 그날 저녁 수도복을 붙들고 밤새 울었다. 그렇게 겨울방학도 끝나고 새학기가 시작되었다. 끊어질듯 끊어질듯 하면서도 나의 수도생활은 어렵게 이어져갔다. 이를 악물고 더욱 열심히 기도했고 공부했다. 한 학기가 아주 빨리 눈 깜빡할사이에 지나갔다. 그러나 여름방학을 하루 앞두고 또다시 충격적인 사실에 접하게 되었다. 점심시간에 누나로 부터 편지를 받게 되었는데, 내용인즉, 어머님이 나오실 길이 더욱 막막해졌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힘들어 못살겠다는 푸념의 말도 함께. 갑자기 눈물이 울컥 솟아올라 식당에서 뛰쳐나왔다. 그리고는 바로 성당으로 달려갔다. 며칠만 더 있으면 묵주의 9일 기도도 164일째로 접어들어 감사의 기도까지 완전히 끝나게 되는데, 그래서 뭔가 기쁜 소식이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더 막막해 지다니, 하느님께 마구 대들었다. 세상에 이럴 수는 없다고 TV에서 방영하는 연속극 같은 것을 보면, 아무 힘도 없는 뜨내기 신(神)에게 백일 지성만 드려도 없던 아들이 생기고, 병도 낫고 하는데, 전지전능하시다는 하느님께 백일이 넘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했는데 잘 되기는 커녕 더 안좋아지다니…. 모든 희망이 한 순간에 날라가는 기분이었다. 주머니에 항상 넣고 다니던 묵주를 꺼내 바닥에 힘껏 내던졌다. 줄이 끊어지면서 묵주알이 여기저기 굴러다녔다. 한참을 그렇게 또 울었다. 이제 다시는 기도 하지 않을 거라고 굳게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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