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라는 어느 가수의 노랫말 때문이 아니라 나는 오래전 중학교 때부터 가을엔 편지를 쓰는 습관으로 이 가을에도 몇 통의 편지를 썼었네. 더구나 금년 가을은 유난히도 마음이 허허로워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생각나는 은사님ㆍ친구ㆍ제자에게 편지를 띄웠다네.
나는 자동차를 타면 항상 FM 음악과 함께 출퇴근을 하는 버릇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네. 이러한 나의 습관은 음악을 공부하였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음악은 항상 닫힌 마음을 열게 해주는 큰 힘이 있는 것 같으며 오늘 퇴근길의 FM 음악은 별로 마음에 와 닫지 않아서 무작위로 손에 잡히는 어떤 테이프를 틀었더니 언젠가 자네의 따뜻한 마음을 담아준 테이프였었네. 그 테이프에서 들려오는 노래를 들으니 문득 자네의 얼굴이 떠올라 이 글을 띄우네.
사랑하는 함군! 언젠가 강의 시간에『예술은 멍든 자의 것』이라고 말한 적을 기억하고 있겠지? 굳이 이 글에서 거창하게 실존주의까지는 들먹이지 않더라도 산다는 것 그 자체가 멍투성이가 아니겠는가? 자네와 나의 다른 차이는 자네보다 내가 더 많은 멍이 들었다는 것 외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보네. 하기야 세상살이에 멍들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만 유난히도 멍이 잘 드는 나의 체질은 때로는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그래서 어쩌면 예술이라는 화려한작업을 해 가고 있는지도 모르네.
술꾼들은 기쁨과 슬픔의 멍을 한 잔의 술로 풀어내지만 예술가는 고통스러운 작업을 통하여 멍을 토해 놓은 것을 많은 사람들은 작품이라고 하는가 보네. 그래서 예술은 많은 경험을 퍽 중요시하고 이런 경험들이 바로 예술의 씨로 영글어서 가장 자기다운 색깔을 토해 내놓지 않는가?
보고 싶은 함군! 언젠가 자네에게 찬 머리보다 따뜻한 가슴으로 살자고 했던 말도 잊지 않았으리라 생각하네. 많은 걸작을 남긴 베토벤ㆍ베르리오스ㆍ고호ㆍ괴테 등 수많은 예술가들은 하나같이 따뜻한 가슴들이 열화같은 열기로 타오를 때 주옥같은 작품을 토해내었다는 사실도 우리는 알고 있지 않는가?
글도 차가운 머리로 쓰고 나면 금방 피로를 느끼고 읽는 사람들에게 마저 피로를 느끼게 하지만 따뜻한 가슴으로 쓴 글은 진솔하고 맑아서 읽는 이들로 하여금 촉촉한 감성의 공감대를 느끼게 하고 음악도 머리로 만든 곡은 오래 남지 못하고 노래도 목으로만 부르는 소리보다 배와 따뜻한 가슴으로 내는 노래만이 이들의 가슴에 와닿지 않는가.
얼마 전에 대중가요 가수인 김현식씨가 세상을 떠났다고 마음이 여린 많은 학생들이 가슴 아파했던 것도 그는 항상 뜨거운 가슴으로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따뜻한 가슴은 모든 예술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삶 자체에도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잊지 말기 바라네. 우리가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지만 진심의 따뜻한 가슴으로 만난 사람이 단 몇 명이나 되는가를 생각해보세.
우리의 머리는 판단을 위한 구조로서 이성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차가워야 하고 가슴은 느끼기 위한 구조로써 감정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항상 따뜻해야 정상적인 인체가 영위되는가 보네. 그래서 우리는 머리가 뜨거워지면 해열제를 먹어야하고 가슴이 차가워지면 발열제를 먹어야하는가 보네. 우리는 잠을 잘 때에도 차가운 윗목에다 머리를 두고 자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때문인가 보네.
많은 예술가들은 어떤 사물을 예리하고 맑은 눈으로 보고 다시 이성적인 찬 머리를 거쳐 판단하고 다시 대상의 이미지가 따뜻한 가슴에 와 닿았을 때도 비로소 예술이란 작품이 떨어 지 듯이 우리는 머리로 만난 많은 사람들 보다는 가슴으로 만난 단 몇 사람은 오래 오래 그 관계가 지속되고 비록 멀리 떨어져 있더라고 잊혀지지 않고 늘상 그리운 사람으로 가슴에 새겨져 있는가 보네.
함군! 이렇게 가슴으로 만날 수 있는 단 몇 사람이 그립고 아쉬워짐은 영악스러운 세상 탓이라고 돌려보려니 왠지 살맛이 없어지네. 이렇게 날로 각박해져만 가는 세상을 살다 보면 자칫하면 따뜻해진 가슴이 식어지기 쉽네. 그땐 얼른 마음을 활짝 열어 보겠나. 식는다고 닫으면 자네 가슴은 점점 얼어붙어 버리고 말 것이네.
많은 사람들은 자기라는 양면의 두꺼운 껍질을 뒤집어 쓰고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가슴은 점점 차가워지고 머리는 더욱 뜨거워져만 가고 있네.
이땐 늘상하는 나의 기도가 있네.
『하느님 제가 제자신을 속이지 않게 하시고 따뜻한 가슴이 식지 않게 하소서』
함군! 오늘 같이 가을비가 내리는 날은 유난히도 마음이 해맑고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그리워 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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