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달라진 것 없이 여름방학을 맞았다. 수도원에서의 생활도 예전과 같았다. 방학 후 처음 접한 어머니의 소식은 역시 누나의 엽서에 의해서였다.
어머니가 구치소에서 의정부 교도소로 이감되셨다는 것이다.「산넘어 산」이라고 이건 정말 해도 너무했다. 교도소는 구치소보다 더 나오기 힘든 곳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이젠 아무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주일 미사 중에 듣게 되었던 신부님의 강론 말씀은 나에게 새로운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흡사 새벽 종소리처럼.
『우리는 흔히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무엇 무엇을 어떻게 해달라든지 아니면 누구 누구를 어떻게 되게 해달라든지 하지만 하느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잘 알고 계십니다. 오늘 들은 복음에도 나오듯이, 빵을 달라는 아이에게 뱀을 쥐어줄 어미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가 기도 중에 쉽게 범하게 되는 잘못은 바로 우리의 뜻이 하느님을 통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기도가 될 수 없습니다. 진정한 기도는 우리의 뜻이 하느님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하느님의 뜻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걱정하기도 전에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이미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바라는 그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다른 방법으로 하느님이 계획하신 뜻대로 그것은 꼭 이루어 질것입니다.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다고 하느님은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열심히 기도하고 간구하십시요. 하느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그때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모두의 시련을 보다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또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나의 기도가 벌써 이루어져 있다는 어렴풋한 생각이었다. 물론 외형상으로는 아무것도 나아진게 없으며 오히려 더 안좋아 졌다고 하는 게 옳은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련에 임하는 우리 가족 모두는 전보다 훨씬 강인해 졌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로를 염려했고 각자 자신의 맡은바 일을 성의껏 해나갔다. 전에없이 우리 식구는 몸은 비록 떨어져 있었지만 마음만큼은 사랑으로 굳게 단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괄목할 만한 것은 작은 기쁨에 만족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 가족 모두의 소망은 크고 획기적인 것에서 아주 작고 소박한 것으로 변해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외형상으로 보이는 어머니의 고통만 아니라면 나의기도는 이미 이루어진 것과 다름이 없었다. 어머니의 고통도 하느님이 따로 계획하신 때가 되면 끝날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여름방학이 시작된 지 얼마 안된 어느 날 교도소 사목을 하시는 수사님께로부터 생각지도 못했던 부탁을 듣게 되었다. 재소자들의 영세를 위한 예비자 교리를 하는데 같이 해보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순간 교도소라는 말에 어머니 생각이 나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여쭈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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