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개월 전의 일이다. 어떤 친구와 만날 일이 있어 약속한 다방에 미리가서 한가롭게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나의 등 뒷자리에서 국민학교 교사인듯한 두 남자의 대화가 우연히 들려왔다. 대화의 내용이 교육과 학교운영에 관한듯 하여 호기심을 가지고 들어 보았다. 이야기가 오가는 사이 나의 온 몸은 굳어지는듯 하더니 끝내는 심장이 멎는듯하였다.
『박선생님! 내가 박선생님의 반을 넘겨 받을 때 수철이 어머니의 교육열이 대단하다고 그러셨는데, 아직 전혀 성의를 보이지않아 저의 입장이 난처합니다』『그럴리가 없는데요. 수철이 어머니의 열성은 교장선생님도 아시는 일입니다. 혹시 이선생이 뭐 잘못한것 아니오?』『아니, 무슨 말씀입니까? 저가 뭘…』『특별한 뜻이 있어서 하는 말은 아니고…』『수철이 성적도 좋습니다. 반에서 3등입니다』『이선생! 역시 아직 서툴군요』『아니 내가 서둘다니요?』『이선생! 문제는 간단해요, 수철이 성적을 두번만 계속하여 확 내려 보아요. 그러면 효과가 금방 나타날것이오. 학년 초에 성적을 잘 주면 학급경영이 매우 어려워집니다』『아 그게 그렇군요』
국민학교 선생님들을 모독할 생각으로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낙도나 시골의 작은 국민학교에서 각가지 어려움을 참고 코흘리개들을 교육하시는 선생님들이 계신다는 것을 몰라서 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세상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보통 사람들 보다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능력이 조금 처지는 아이들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쏟고 있는 선생님들이 계신다는 것도 잘 알고있다. 그러나 앞의 대화와 유사한 대화나 행위를 우리사회의 여러 모퉁이에서 흔히 들을 수 있음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아파트의 베란다에 대롱대롱 매달린 허연 속옷 빨래나 양말짝이 결코 보기좋지 않듯이, 사람도 제자리를 찾지못하고 남의자리에 앉아있는 모습이란 역시 흉한 꼴이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하나의 흉한 꼴로만 끝난다면 인내의 덕을 딱는 셈치고 참고 넘기거나 아니면 한바탕 허탈하게 웃어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사정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는가싶다.
사람의 말과 행위가 그자리에 맞아떨어지지 않을때에 사회적 불신(不信)이 싹트기 때문이다. 어떤자리를 감당할 능력이 없거나 아니면 그자는 사람이 어찌어찌하다가 남의자리를 차지하게되면, 그는 그자리에 앉아있다는 사실때문에 그자리에 맞는「말과 몸짓」을 하게된다. 그것은 없는 능력이나 없는 사명감을 감추는 포장지에 불과하다. 능력이 없거나 사명감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자리를 차고들어앉는 사례가 늘어나면 그 만큼「포장지 말」과「포장지 짓」이 더욱 난무하기 마련이다. 이러한「헛 소리」와「헛 짓」이 반복되면, 「헛 소리」와「헛 짓」은 뒷전으로 밀려 나게된다. 그러다보면 너도 나도「헛 소리」와「헛 짓」을 흉내내어 세상에서 한몫을 해보려 하게되다. 이렇게 너도 나도 「헛 소리」와「헛 짓」을 흉내낼 때에 사람은 아무도 믿을 수 없게된다. 이러한 현상을 필자는 불신문화(不信文化)라고 불러본다.
불신문화가 난무하는 세상에서는「헛 소리」와 「헛 짓」을 요란스럽게 연출하는 사람이 바로「큰 사람」이 된다. 「큰 사람」의 큰「헛 소리」와 큰「헛 짓」이 있으면 작은 「헛사람」들은 줄줄이 따라 다닌다.
이런 「큰 사람」을 우상이라고 한다. 한손은「헛 소리」로 다른 손은「헛짓」이라는 무기로 무장한 우상의 발아래서는 「참 말」「참 짓」이 「헛 소리」와 「헛 짓」이 되고만다. 그리고「헛 소리」와「헛 짓」은 더욱 기세를 올리게 된다. 「헛 소리」와「헛 짓」을「참 소리」와「참 짓」으로 보이게 하려니 포장지는 더욱 화려해지며 포장기술 또한 망칙스럽게 변해간다. 그러나 보면 상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어 가는듯하다.
상식이 통하지 않으니, 끝내는 눈을 부라리며 입에는 허연 거품을 물고 사람들을 불호령으로 몰아친다.
그것도 별 효과가 없고 보면 사람의 눈에서 눈물과 피를 흘리게한다.
금년은 성체의 해다.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사람에게, 아니, 불신에 빠져버린 우리 시대의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것은 신뢰의 눈이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신뢰를 주시려한다. 금년에는 불호령에 따라 대오를 갖춘「주검의 질서」를 극복하고, 남의자리에서 조용히 내려 앉아, 「참소리」를 듣고, 「참 짓」을 격려할수있는 기회가 늘어 났으면 한다. 불호령에 깜짝깜짝 놀라는 마음 약한 사람들도 속 편한 시간을 좀 더가지고 싶은것이 우리의 소망이다. 남의 자리는 주인에게 되돌려 주고 제자리를 찾아 나설때에 불신은 서서히 사라질것이며 우상의 자리에 상식이 돌아 올듯 싶다. 하느님과 사람들을 함께 죽여 버리는 우상은 불신을 먹고 자라며, 불신은 남의 자리를 차지한「헛 사람」들이 심고있는 것이다. 불신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모두가 제자리를 찾아돌아가는 구조적 변화에 있는가 싶다. 제자리를 찾아 돌아가는것이 질서이며, 그것이 사물의 본질이며, 하느님의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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