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 전「11시에 만납시다」심야 TV프로에서 88세의 함석헌 노옹을 보았다. 오랜만에 화면을 통해서 본 그 얼굴에서 나는 직감적으로 저분이 어딘가 암 병으로 고생하고 있구나하는 직업의식이 발동되었다.
의사는 시진(視診)이란게 있어 어떤 사람을 보기만하고 즉시 진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과연 과정을 듣고 보니 간에 종양이 있어 대수술을 받고 회복되어 나오셨다고 한다. 그 분이 아나운서와 대담 중에서 하신 세 말마디가 나의관심을 끌게 하였는데, 첫째는 나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둘째 젊은이들이여 생각을 많이 하라. 셋째는 국가를 초월하라는 내용이었다. 비록 그분의 얼굴에 병색이 완연하고 창백하였으나 눈에는 아직도 총기가 있고 말씀하시는 그 모습이 88세의 노옹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힘이 있었고 자신감에 차있었다. 지극히 순박하면서도 단순하고 또한 생각이 깊으면서도 자유로워 보였다. 젊었을 때 저명인사였거나 정치일선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정치인들이였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이가 들고 몸이 늙으면 생각과 자세가 흐트러지며 자기의 지조를 지키지 못하고 현실과 타협하여 졸부로서 세상의 마지막을 맞는 모습을 줄곧 보아온 나로서는 이 함옹에게서는 이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특히 나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이 영감님이 창조주 하느님 앞에 당돌한말을 하는구나하며 비판적 생각도 없지 않았으나 곧 다시 감동적인 말씀이 나에게 전해졌다. 즉 곧 이 몸은 시들고 병들어 썩지만 진리인 나의 생각과 사상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고 부언하며, 이미 죽음의 세계를 초탈해 있는 그분을 보면서 또 한 번 다시 놀랐다. 한마디로 지극히 자유(自由)스럽고 평화(평화)로운 노옹을 보면서 나는 다음과 같은 상념에 젖게 되었다.
아! 모든 세상의 얽매임으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한인간의 참모습을 여기에서 보고 있구나 하고 감탄하였다. 곧 성서에서 『진리(眞理)가 너희를 자유(自由)케 하리라』란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이세상의 지혜이시며 진리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맘속에 새기고 간직하며 살게 되면 저처럼 자유로운 인간으로 변화(變化)하는구나 하는 사설을 눈앞에 직접보고 느끼게 되었다.
사실 우리인간들은 이스라엘 백성들(人類)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다가 하느님 사랑의 배려로 시나이 광야를 거치면서 수많은 방황을 하였고 극소수만이 가나안 복지인 자유의 땅에 들어가는 감동의 장면을 출애굽기를 통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나를 포함한 우리들의 인생여정도 이와 마찬가지로 이집트 노예생활을 버리고 적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자유의 목표를 향하여 행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현재 시나이 사막에 도달하여 있으며 여기에서 괴로움을 참지 못하고 옛 노예생활을 그리워하며 우리의 길잡이이신 모세와 예수님께 수많은 불평을 토로하며 그분들을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내가 불의(不義)와 타협하여 현실에 안주(安住)하며 육신적 평락을 누리며 다른 사람들처럼 살수도 있는데, 왜 내가 크리스찬으로서 양심과 사회정의 앞에 고민하여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반문해보면, 참된 자유와 진리의 삶을 외면하려고 하고 있지는 않은가를 생각해본다. 우리주위를 돌아보면 우리들은 지역에 얽매이고, 혈연에 얽매이고, 교회제도나 율법에 얽매이고, 국가에 얽매여서 이 모두의 노예로 전락하여 얽매인 인생의 삶을 살다가 마지막을 맞는다고 생각되어진다.
요사이 선거의 열풍이 높아지면서 이러한 모습들을 너무나 실감하게 되는데 정치인들은 자기들의 야욕을 성취하기 위해서 권력과 금력으로 모든 국민을 선진조국 발전이란 타이틀에 묶고, 영호남의 지역감정에 묶고, 반공에 묶고, 군의 신성한 충성심에 묶고, 대학입시 지옥에 묶고, 등등하여…모든 사람들이 꽁꽁 묶여 자유로운 생각과 판단을 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심지어는 이 고장에서 출생하여 수십년 살고 있는 어떤 후보자에게 그는 전주에서 태어난 전주사람이 아니니 그 사람에게 투표를 해서는 안 된다는 식이 편협한 논리를 전개하는 어떤 사람을 보았다.
이와 같이 사회는 사회대로, 교회는 교회대로 이모든 율법에 속박되어 인간 천부의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자유를 망각한 체 죽음의 행진을 그대로 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도 바오로는 이러한 우리들에게 율법의 속박으로부터 하루속히 해방되어 참된 자유인(自由人)이 되라고 촉구하고 계신다. 우리교회는 교계제도에 너무나 얽매여서는 안 되며 평신도들의 생각과 활동을 제약하거나 억제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되며, 교회와 평신도는 다 같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율법에 깊이 침장 될 때만이 하느님 앞에 참으로 자유로운 교회로 또 깨끗하고 자유로운 인간으로 성장발전 될 수 있다고 굳게 믿어진다. 또 사회는 사회대로 이러한 잘못된 학연, 지연, 군연의 틀에서 벗어나 모든 국민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유롭게 말하고, 자유롭게 판단하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게 함으로써 각 사람에 내재되어 있는 소중한 달란트가 개발될 수 있게 하여야한다.
특히 이 나라의 정치지도자들이나 사회지도층에 있는 분들은 인간 각개인의 달란트를 억제함으로써 하느님 앞에 무서운 죄를 짓지 말아야하며 다 같이 모두 함께 이 달란트개발에 전력하여야 될 줄로 믿는다. 그렇게 될 때 한국이란 국가의 개념도 세계화로 발전하여 세계 속의 조국으로 성장하며 그 속에 사는 우리들도 지역과 국가를 넘어서 광활한 대우주에 나래를 펴며 참다운 자유와 평화를 누리는 복된 국민으로 성장할 수 있으리라고 자신을 가져본다.
마지막으로 사도바오로의 말씀을 소개하면서 이글을 끝맺을까한다『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매여 있지 않는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내가 유다인들을 대할 때에는 그들을 얻으려고…나 자신은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으면서도 그들을 얻으려고 율법의 지배를 받는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나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하고 있습니다』
(고린토전서9, 12~20ㆍ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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