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는 1988년 어버이날을 기해서 다시 한 번 모든 신자들과 국민들 그리고 정부당국자들의 양심을 일깨우고 있다. 우리한국교회의 『신앙의 유권적 참고사이며 대사제요 목자(주교들의 교회사목직에 관한 교령 2)인 주교들이 수행하는 당연한 사목직중 하나이므로, 모든 신자들은 『주교들의 말을 듣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이고 주교들을 업신여기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를 보내신 분을 업신여기는 것』(교회헌장20)이라는 공의회의 가르침을 상기하면서 적극적인 순종의 자세를 가지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고 본다.
주교단은 오늘날 낙태건수가 일년에 통상 2백만건은 된다고 보면서 이렇게 수많은 태아살인을 묵인할 뿐 아니라 나아가서 각종악법을 통해서 조장까지 하고 있는 정부의 비윤리적 가족계획 시책을 신랄히 비판한 후, 자연법에 맞는 가족계획방법, 자원개발, 이민들을 통한 인륜을 거스리지 않는 가족계획 사업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주교단은 국가의 법률과 각종시책이 국민의 윤리도덕의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잘 파악 하고 있기 때문에 담화문의 대상을 특별히 정부당국자들에게도 두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4ㆍ26총선 때 국회의원 입후보자들, 소위법률의 심의제정을 책임지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탈법과 크고 작은 뇌물공여를 일삼았는지를 체험했다. 따라서 이미 당선된 의원들의 법 준수 의식과 윤리의식 또한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월 14일자 동아일보에 소개 된 김병주씨의 국회의원 의식조사결과를 보면 우리는 아연실색 하지 않을 수 없다.
총 응답자 1백 11명중 70%이상이 낙태에 찬성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현행법상 1년 이하의 징역이 규정되어있는 불법적 임신중절(사실상 사무화 되어 있는 현실이지만)을 두고서, 기혼자의 낙태에 대해서는 69%, 미혼자의 그것에는 78%의 국회의원들이 허용해도 좋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일정한 시대와 장소를 지배하는 법의 뒤에는 모든 시대와장소를 공통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보편적인 법, 곧 자연법이 있다. 국가법의 바탕에는 항상 이 자연도덕률이 자리 잡고 있어야하며 나아가서 국가법은 국민의 윤리의식을 제고시키는 수단이 되어야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특혜를 약속하면서 불임수술을 권장하고, 불법적 낙태를 허용하며, 태아의 착상을 방해하여 마침내 죽게 만드는 살인적 자궁 내 장치를 보급하고 있는 정부의 소위 가족계획사업은 결국 인간생명에 대한 국민들의 윤리의식을 뿌리에서부터 파괴하고 있는 사업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소위 모자보건법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1986년 5월 10일 법률 제3824조로 개정 반포된 모자보건법 14조는 부부 중 한사람이 우생학적, 유전적 장애자일 경우, 대통령이 정한 전염병을 가진 경우, 강간 또는 준 강간에 의해 임신, 혼인이 금지된 혈족 또는 인척사이에서 임신된 경우, 임신의 지속으로 모체의 건강을 심히 해칠 경우 등에는 낙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심지어 같은 법 15조에는 보건사회부장관이 특별경우의 환자에게 불임시술을 받도록 명령할 수도 있다고 되어있다.
모든 권위기원은 하느님께 있다. 국가의공권력 역시 참된 공동선을 구현하기 위해 하느님께로부터 허락되어진 것이다. 따라서 공권력이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하느님의 계명을 거스릴 때 그 공권력은 이미 정당성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악법에 대해 주교단은 한마디로 잘라 말하고 있다 『개인의 이익이나 공동체에 이익을 위해서도 생명권을 빼앗지는 못 합니다』
그러나 주교단은 『태아의 희생을 묵인할 수밖에 없는 긴급조치』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이것은 교회가 전통적으로 인정해온 간접적 낙태의 경우를 두고 말한다. 간접적 낙태가 허용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엄격한 조건들이 충족되어야한다 산모의 목숨을 구하기위한 중대한 경우, 그리고 다른 유효하고도 태아에게 위험하지 않는 치료방법이 없을 경우에 행해지는 치료방법으로서 치료의 의도가 임신의 중절을 위한 것이 아니어야한다. 이 치료는 산모가 임신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시행되었음직한 치료로서, 의사와 산모의 뜻이 낙태를 치료행위의 목적으로서, 치료의 방법으로서도 설정하지 않고 오직 병의 치료에만 목적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떤 구실과 변명도 포함되지 말아야한다. 그 병이 낙태를 통해서 고쳐지는 것이 아니고 임신의 중절, 태아의 죽음이 뒤따를 수도 있는 의학적, 외과적 간섭을 바로 치료상의 낙태, 또는 간접적 낙태라고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자궁암이 침투한때의 임신과 자궁외임신의 경우이다. 또한 주교단의 담화문은 모체의 생명이 단지위험한경우가 아니라 모체와 태아 모두의 죽음이 확실한 경우 모체를 살려야하는 의학적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같다.
이 경우는 어머니를 살리느냐 아니면 아기를 살리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두 생명 모두가 죽게 버려두느냐 아니면 한 생명이라도 살리느냐 하는 문제인 것이다.
낙태는 죄악으로 여기지만 불임수술은 크게 개의치 않는 신자들이 많이 있다. 정부의 불임수술 장려책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는 증거이다. 주교단의 담화문 뿐 아니라 이미 최근의 여러 교황들이 직접적 불임수술은「교회조차 관면권이 없는 중대한 자연 도덕률을 거스리는 부당한 행위」(비오12세)이며 인간은 자기육체의 주인이 아니라「제한적 지배권, 즉 사용권」만 있으므로 불임수술을 통해서 중대한 지체를 파괴하거나 절단할권리가 없음을 밝히고 있다(비오 11세). 또한 교황들은 공권력에 의해서 권장되거나 강요되는 불임수술은 더욱 크게 단죄하고 있다.
바오로 6세는 국가가 인구정책에 개입할 권리는 인정하지만 윤리법에 순응하고 부부의정당한 자유를 존중할 것을 요구하였다.
주교단은 이 담화문 서두에서 최근 15년 동안 인간생명의 존엄성에 대하여 십여차례나 교회의 입장을 밝힌바 있다고 하였다. 주교단의 이러한 가르침들이 교회 바깥의 국민들이나 정부당국은 고사하고 신자들에게나마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지 우리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손성호 신부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1983년 대구대교구 22개 본당 3백54명의 기혼여성 중 39%가 피임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43%의 응답자들이 불임수술을 받았고 70.5%가 낙태의 경험이 있다고 하였으며 자기네 본당 사목자가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무관심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60%가 넘었다. 우리는 이 주교단 담화문이 신자각자의 손에 충실히 전달되기를 바란다.
나아가서 각 교구마다「이간의 존엄성과 그 생명권의 중요성, 인공유학과 죄악, 불임수술의 오도, 산아제한의 오용, 정부의 차별적 제도」등의 문제를 연구하고 교회내외의 여론을 환기시키며 신자들을 교육할 전담기구가 생기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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