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아직 잔설 속에서 고개만 뾰족 내밀고 있던 어느 오후 퇴근길에 그립던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대를 이은 개신교 신자로 성실하고 온화하며 세 자녀를 모두 S대학에 보낸 주부이며 시인이다.
그런데 지난겨울 어떤 어려움이 있어 격렬한 고뇌에 시달리다가 가톨릭교회 신부님의 도움을 얻고자 평소에 눈에 익혀 둔 성당을 찾아갔다고 한다. 전화로 연락을 드리니 바쁘다는 이유로 미처 이쪽 이야기도 꺼내기 전에 먼저 전화를 끊어 버리더라는 내용이었다.
그 본당의 이름을 물었을 때 어느 외국에 유학하신 신부님으로 학위가 어떻고 하면서 소개했던 내 골이 어떠했을지는 상상에 맡기고 싶다.
하긴 요즘 바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모두 바쁘고 영악해서 잘 산다는 것을 모르는 이도 거의 없다. 그러나 어쩐지 그 신부님은 구하는 자의 손을 뿌리친 것 같아 섬뜩하다. 더군다나 다시는 천주교 신부를 찾는 일은 죽어도 하지 않겠다고 말을 끝냈을 때는 내 가슴이 서늘해지고 어떤 어둠의 골짜기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각박하고 변화무상한 시대에 시달리고 있지만 마지막 빛을 찾아 문을 두드렸는데 문전박대를 당했다면 실망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이제 친구를 개종시키겠다던 나의 꿈은 영영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박모니까<경남마산시양덕1동 타워APT12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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