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제는 외출할 때에 방문을 잠그지 않는다. 하도 특이한 생활방식인지라 왜 그러하는지를 물었다. 그랬더니 그 대답이 마치 선문답(禪問答)을 듣는 것 같았다. 『문을열어 놓아도 잃어버릴것이 없어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내 자신만 잃어버리지 않으면 되는 것이지요』자기 물건 간수를 소홀히 해서 남으로 하여금 이상한 마음이 생기게 할수 있다는 문제점도 있겠으나 무언가를 생각하게 하는 말씀이다.
사실 바삐 살다가 보면 잃어버리고 사는 것들이 많다. 어떤 때는 내가 누구이고, 지금 내가 무엇을 하며 사는지에 때해서 조차 머리속이 어수선해진다. 더구나 제도속에 묻혀 살다 보면, 어려운 용어로 소외(疎外)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제도속에 인간이 빨려 들어가, 제도의 노예가 되어 허덕이고 쫓기며 사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
한 예로 성금(誠金)에 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성금이라면 문자 그대로 자신의 정성이 담긴 돈이어야 한다. 마음에서 우러나 자발적으로 내는 돈이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어떠한가? 「국민학생은 얼마, 중고등학생은 각각 얼마, 직장인은 얼마 또는 봉급의 몇%」하는 식으로 낸다. 거기에다가 동네에서도 또 얼마를 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짜증이 난다. 이게 성금인가, 세금같은 것인가, 아니면 성금세인가? 그리고 성금의 종류가 어찌 그리도 많은지? 그런데 조직사회에 속해 있다 보면, 투덜거리면서도 그냥 낼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이짓이 반복되면서 돈을 내는 주체인 인간은 갈수록 작아지고 잃어버리게(自我喪失)되는 한 모습이다.
우리는 이렇게 제도속에 휩쓸려 살며 자신을 잃어버리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타의에 의해서 제가 가진바를 뺴앗기며 살아가기도 한다.
우리에게는 잃어 버려서도 안되며, 또 누구에게도 빼앗겨서는 안될 인간의 존엄성이 있다. 지금 내가 지녀야 할 것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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