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한 얘기 같지만 인간의 값어치를 물량적으로 환산해보면 너무나 보잘 것이 없다.
미국의 어느 과학자가 사람의 몸값을 물질적으로 따져봤더니 한 잔의 커피를 달게할 수 있는 당분세 세수대야의 물, 문돌쩌귀 세개분의 철분, 연필 세자루분의 흑연, 성냥골 2백 2개피분의 유황, 세수비누 일곱개분의 지방질, 사진 한번찍을 수 있는 마그네슘 한 숟가락 등으로 값을 쳐보니 1불 40센트 정도였다고 한다. 우리 돈으로 계산해보면 천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인간의 물량적 값어치는 분명 개나 돼지ㆍ닭ㆍ심지어 뱀이나 지렁이보다 훨씬 못하다. 지렁이탕도 한 사발에 기천원을 하니까 말이다.
이들 짐승들을 잡는 장면을 보면 목덜미나 팔다리를 비틀어 펄펄끓는 물속에 처넣거나 모가지에 줄을 묶어 작은 구멍을 통해 숨이 끊어질 때까지 세차게 잡아당긴다. 때로는 몽둥이로 박살을 내거나 털을 뽑아버린다. 도살장에 끌려간 소는 망치 한두방으로 그 큰 덩치가 순식간에 허물어지고 만다.
故 박종철 군의 고문치사 사건을 보면서 그의 죽음이 개패듯이 얻어맞고 볼펜 등으로 수십차례 쑤심을 당한 후 모가지를 비틀려 끓는 물속에 처박히는 닭의 최후장면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사실에 인간으로서의 당혹함과 수치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인간이 한 인간을 죄가 있고 없고를 불문하고, 짐승처럼 죽여버린 이 기막힌 사건을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하나?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권리를 누구한테 받았단 말인가?
사람이 사람을 짐승처럼 죽이는 이 현실이 과연 만물의 영장입네하는 인간들이 숨쉬고 살아가는 인간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특히나 그것이 공산주의 국가도 독재 국가도 아닌, 입만 열면 자유니 민주니 정의니 복지니를 떠벌리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말이다.
거짓말도 한 두번은 속아준다. 그러나 거짓말이 상습적이 되면 동화(童話)에 등장하는 아이처럼 짐승의 밥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가?
이제 모두들 입 좀 조심해야겠다.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보고 대우하지 않는 곳에 무슨 자유가 필요하고 민주나 정의나 복지가 필요한가? 짐승들이야 입맛 당길 때 잡아먹으면 그만이지, 누구를 위해 누구에게 보이기 위하여 그처럼 얼토당토 않은 거창한 용어들을 식은 죽 먹듯 내까리는지, 그 알량하고 말 잘하는 입들 제발 부끄러운 줄 좀 알았으면 좋겠다.
더 한심한 것은 사람을 짐승처럼 죽여 놓고 그 통탄함과 극도의 수치심이 채진 정도되기 전에 소위 정치한다는 자들이 서로 자기편에 유리하게 이 처참한 죽음을 이용하려는 처사는 또 무엇인가?
모두들 인간된 처지를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하겠다. 어찌 인간의 탈을 쓰고 인간답지 못한 짓을 예사로 할 수 있는가.
인간이면 인간다와야 한다. 인간이 인간답지 못하면 동ㆍ식물과 뭐가 다를바가 있는가. 인간이 동식물과 구별되는 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에게는 육체와 더불어 정신 곧 영혼이 있다는 사실이다. 육체와 영혼은 상호 분리될 수 없고 하나의 전체로서 인간 개체를 형성하고 있다.
인간이 어느 정도로 위대한 존재인가는 재론할 필요가 없겠지만 우리 교회 입장에서 보는 인간은 바로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창조된, 이 지구상에서는 가장 고귀하고 유일무이하게 존엄한 존재이다.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창조되었음을 믿든 안믿든 간에, 인간 안에 내재하고 있는 양심(良心)은 곧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인간이 죄를 범하거나 인간의 품위를 거스리는 행동을 했을 때 양심이 가책을 느끼고 괴로와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불인간적이고 반인간적며 비인간적인 행동을 하고도 양심에 아무런 꺼리낌도 느끼지않는, 인간 아닌 인간들이 인간 세상에 섞여 살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이 하느님과 소통하는 통로인 양심이 병들고 썩은 인간들이 많으면 많을 수록 그 사회는 시들고 망하기 마련이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고 집권자들이 양심있는 자들이라고 믿고 있는가? 집권자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깊이, 통절히 자기성찰을 해야 한다. 집권자 개개인의 양심이 병들거나 썩지 않았는가, 공권력의 미명아래 인간 아닌 짓을 자행하고 있지는 않은지, 하늘을 우러러보며 인간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엄숙히 반성해야한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박종철 군을 살인한 그 경찰관들도 진정 회개함으로써 구원받아야할 인간이며 고문살인을 방관, 사주한 자들도 역시 구원받아야할 사람들이다.
인간이 인간다와지고 이 세상이 진정 사람들이 사는 인간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병들고 썩은 양심을 고치고 도려내어야할 것이다.
잃어버렸거나 병든 양심을 회복할 수 없다면 그는 이미 스스로 인간이 기를 포기한 것임을 잊지 말자.
그리고 스스로 인간이기를 바란다면 더 이상 다른 사람을 고문하거나 죽이지 말자.
그래서 하느님이 자기 모상을 따라 만드셨고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시는 그 자비심을 더 이상 시험질 하지는 말자. 하느님도 참으실 만큼 최대한 참아주고 계심을 알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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